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Aug 18. 2020

나는 그럴 자격이 있다

교회에 쏟아지는 비난을 보며 든 생각

 

 교회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을 두고 여러 생각이 든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활동가는 '죽어 마땅한' 흉악범이 등장할 때 제일 힘들고, 이주민 인권을 외치는 활동가는 이주민이 범죄에 연루됐을 때 제일 힘들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한 사건이 오랜 시간 공들여 온 주장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신천지와 이태원 클럽 발 감염 확산이나 이번 사랑제일교회 발 감염 확산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방역수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신천지와 성소수자들에 쏟아졌던 비난이 이번엔 개신교로 옮겨갔다. '일부' 개신교인 문제가 아니라 개신교인 전체가 문제라며 악을 쓰는 사람들도 보이고, 그에 대해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는 개신교인들도 보인다. 절대선이 되어버린 'K-방역'을 망친 '대역죄인'들과 정체성을 공유한 이들은 변명의 여지없이 고개를 숙여야 한다. 바른 믿음을 지키려 애써온 분들의 허탈함도 절절히 느껴진다.


 그런데 내 입장에선 정말 기도 안 차는 이야기들이 많다. 어느 집단에나 극단적인 사람은 있게 마련이고 집단 자체의 크기가 클수록 극단적인 사람이 더 많아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극단적인 사람들이지 그 집단 전체가 아니다.


 미드 <뉴스룸>에서 주인공 윌은 이슬람교도 전체를 테러리스트로 지칭하는 극우 정치인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우리는 무슬림들에게 공격당한 게 아니라 소시오패스들에게 공격당한 겁니다! We weren't attacked by Muslims, we were attacked by sociopaths"


 전광훈 같은 반사회적 인간이 저지른 테러는 그 자체로 비난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것을 핑계로 개신교인 전체를 범죄 집단으로 몰고 가는 것은 감정적 배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개신교인 인구가 대충 8-900만 명이다. 무슨 이익단체도 아니고 중앙집권적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개신교인인 사람도 있고 여러 이유로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도 있다. 별 대표성도 없는 기독교 단체 관계자가 저지른 범죄행위로 인해 같은 종교를 가진 모든 사람이 반성해야 한다는 말은 한총련 같은 단체가 저지른 범죄를 대학생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처럼 공허하다.


 물론 '개신교인'을 하나로 묶는 핵심가치가 범죄행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면 집단 전체를 비난하는 게 정당하다. 성경의 가르침이나 개신교 주류의 해석이 방역을 치는 행위에 근거를 제공했다면 개신교인들이 자성해야 할 일이지만, 상식적으로 마스크 벗어던지고 코로나 파티를 하라는 지침이 기독교 주류라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절대다수의 교회들이 방역지침을 철저히 지키고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적어도 방역의 영역에서 일탈을 조장한 세력들은 개신교인 중 극소수일 뿐 아니라 이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성경의 가르침 따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남편의 팔을 물어뜯고 도주한 확진자가 성경을 들고 있었다고 해서 개신교인의 정체성이 그를 비이성, 반지성적인 소시오패스로 만들었다고? 얼토당토않은 주장이다.


...


 물론 내가 '개신교인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을 멈춰주세요'라고 읍소하려고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인구 800만의 거대 집단인 개신교가 우리 사회에서 차별당하고 혐오받는 소수자 위치에 있다고 우기는 것도 우습다(급속도로 소수가 되어 갈 것은 분명하다만).


 그리고 개신교인들이 이런 '범주화'와 '편견'에 의한 비난을 적극적으로 방어할만큼 그동안 모범을 보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우한에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발생하자 공산주의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 주장하고, 신천지 성도들로 인해 감염이 확산되자 개신교인들이 앞장서서 신천지의 치부를 까발렸다. 게이클럽에서 확진자가 나왔을 때 성소수자들을 '범주화'하고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은 것 역시 기독교인이다.


 이런 움직임은 일부 개신교인이 저지른 잘못이 아니다. 위와 같은 요지의 주장들이 주요 교단의 신학자들, 주요 교회의 목회자들 사이에서 나왔고 교인들은 이를 열심히 퍼나르며 혐오를 확대재생산했다(나도 카톡 좀 받았다). 안타깝게도 이 움직임을 저지하려는 시도들은 매우 미약했다. 나는 성경의 가르침이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 굳게 믿지만, 적어도 주류 개신교는 이 부분을 무시하거나, 이 부분에 무지하거나, 오히려 반대편에서 약자들을 억압했다.


 전광훈 류의 악다구니는 그냥 무시하면 된다. 그게 개신교를 대표하는 모습도 아니고 그를 빌미로 개신교인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목소리 역시 기분 나쁘지만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정말 두려운 것은 우아한 기독교 예배와 기독교 신학 사이에 숨어있는 혐오와 배제와 차별이다. 어떤 집단을 범주화한 후 그 집단에 열등한 속성을 부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악한 존재로 낙인찍고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다. 목사의 주장에 무의미한 권위를 부여하여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한다. 반대하는 목소리는 믿음이 부족하다느니 시험에 들었다느니 세상에 물들었다느니 하며 배척한다.


전광훈 류의 극단과 주류 개신교는 다르지만, '싸잡아서 하는 비난'의 주체가 되어 온 개신교인들에게 '싸잡아서 하는 비난'에 적극적으로 대처변명거리가 없다는 게 너무나 안타깝다.


....


 나는 사랑하는 기독교인 친구들이 이 힘든 시기를 잘 견디길 바란다. 그리고 이 기회에 우리가 소수자를 대해온 방식에 대해 한번 돌아보면 좋겠다. 우리가 애매히 받는 고난과 잘못해서 받는 고난을 구별하고, 애매히 받는 고난은 믿음으로 극복하되 잘못으로 인한 고난은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키면 좋겠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는데 내가 이 글을 굳이 쓰는 이유가 있다. 나는 내가 이 글을 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교회가 신천지에 의해 당한 고난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감염이 확산됐을 때 신천지 교인을 싸잡아 비난하지 말자고 주장했다(욕 뒤지게 먹었다). 나는 클럽 한번 간 적 없고 '자유분방한' 삶에 대한 체질적인 거부감이 있지만 이태원 클럽에서 무더기로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그들을 비난하지 말자는 글을 올렸다(욕 뒤지게 먹었다).


 난 특별히 정의롭지도 용감하지도 않다. 내가 긁어 부스럼을 만든 이유는 내가 그 비난의 대상이 됐을 때 부끄러움 없이 내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언젠가 내가 소수가 될 수 있음을 늘 기억한다. 그때 누군가 내편에 서줄 것을 기대하며 지금 그들의 자리에 서려 애쓴다.


나 하나 이렇게 한다고 세상이 얼마나 바뀔지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 부끄러움은 털어낼 수 있다. 동참할 사람을 기다리며, 오늘 또 욕먹을지 게 뻔한 글을 쓴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 월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