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Dec 15. 2020

공동체에 대한 의무

세번째 보고서를 내고


1. 세 번째 보고서


 일이 많은 와중에 무리해서 보고서 하나를 더 썼다. 유럽의 코로나 재확산 추이와 원인, 대응 그리고 경제적 영향까지 다룬 20페이지짜리 현안 보고서다.  


 굳이 쓸 필요도 없고 여력도 없었지만 그래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방역 수칙을 지키려 손해를 감수할 필요 없는 내가, 현장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거금을 기부해 불우해진 이웃을 돕는 것도, 따뜻한 문장으로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것도 못 하는 내가 어떻게든 빚을 털고 싶은 마음으로 쓴 보고서다. 내가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누구에게 도움이나 될까 싶지만 나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보고서를 쓰는 2~3주 새에도 유럽의 상황이 시시각각 변해서 따라잡느라 애를 먹었다.  몇 번을  갈아엎은 끝에 지난 금요일 겨우 보고서를 냈다.  그러고 나서 또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재확산에도 비교적 유행을 잘 통제하는 나라'로 분류했던 독일에서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선방하던 북유럽 국가들도 조짐이 안 좋다(스웨덴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나중에 여력이 되면..). 괜찮다고 방심하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바이러스라 분석도 예측도 조심스럽다.




2.  소신


 보고서의 내용은 대략 1) 1차 유행에서 피해가 큰 나라가 2차 유행에서도 피해를 크게 입었고, 2) 강력한 봉쇄로 1차 유행을 통제했던 나라도 대부분 2차 유행을 피하지 못했으며, 3) 코로나19의 경제적 피해는 평등하지 않았고, 4) 방역과 경제는 단기적으로 음의 상관관계가, 장기적으로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 정도다(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분석은 했고 시사점을 써야 하는데, 브런치에 종종 올렸던 내 소신을 국책연구원 보고서의 결론으로 쓰기엔 무리가 있었다. 재확산의 위기 앞에 '자율과 책임'이며 '완화정책'이며 '죽음보다 못한 삶' 같은 이야기를 쓰면 당장 '방역을 포기하자는 거냐'하는 이야기가 나올 게 뻔하다. 그런 얘기는 애초에 검독 과정도 통과 못해 보고서로 나오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보고서의 워딩은 오해를 피하게, 그러나 내 생각이 아예 배제되지는 않게 신경 써서 적었다. 예컨대 이런 거다.


먼저 "방역 대응의 강도가 높을수록 경제는 단기적으로 큰 피해를 입으나 코로나19를 통제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경제가 회복되기 어려우므로 유행 초기에 선제적이고 과감한 통제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음."이라고 쓰고,


"단, 강압에 의한 장기간의 통제는 부작용이 크고 효과도 떨어지므로 지속가능한 방역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르는 피해를 정확히 설명하고 시민들의 공감을 얻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함 ... 이에 더하여,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인해 감염 확산이 악화될 가능성을 대비하여 고위험군에 대한 집중 보호를 통해 사망률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함."


 이렇게 단서를 다는 것이다. 거기에


"또한 통제조치가 장기화될 경우 취약계층의 경제적 피해가 심화되고 전체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므로 적극적이고 신속한 재정 지원이 수반되어야 함."


라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장도 덧붙였다(나중에 기사에는 이 문장이 나감).




3. 이상과 현실


 내가 보고서에 속마음을 못 담았다고 부끄럽거나 개탄스럽지는 않다(전혀). 국책연구원 보고서가 아니어도 연구자로서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고 당위적 선언과 실제 사람들의 행동을 구별하여 분석하는 과정은 필수이다. 내가 완벽한 균형이라는 이상만 말하고 현실에 뿌리내리지 않은 대안을 제시하는 건 연구자로서 직무유기다.


 예를 들어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는 방역 대응의 성적표가 아니지만(다른 수많은 변수의 영향을 받음), 사람들은 확진자와 사망자로 정부를 평가하고 지지 여부를 결정한다. 조심하기 위해 집에 머무르는 것보다 방역수칙을 지키며 안전한 범위에서 활동하는 것이 전체 사회를 위해 더 유익한 행동인데 전자만 시민의식으로 포장된다. 확진자가 늘어 의료체계에 과부하가 걸리는 건 과대평가하면서 통제 정책으로 자영업자, 서비스직 비정규 노동자, 학생, 시설 이용자 등이 희생하는 건 과소평가하여 과도한 방역 대응을 요구하기도 한다. 


 내 눈엔 코로나 시대의 '상식'에서 군데군데 왜곡된 인식이 보이지만, 그게 우리가 뿌리내리고 있는 현실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인식으로 인해 실제 행동과 그 결과가 달라진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어떻게든 '확진자 감소'라는 목표를 달성해야 거리두기 단계도 내릴 수 있고 자영업자들도 숨통이 트인다. 그래야 정부 지지율도 올라가고 국가 이미지도 좋아지는 것이다. 거기서 얻는 이익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공포를 자극하고, 집에만 머물자며 캠페인을 하고, 나돌아 다니는 사람을 비난하고, 감염자를 죄인으로 만들고,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당장은 확진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 현실은 내가 '균형 잡힌 방역' 따위의 이상을 부르짖는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에 뿌리내린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내 속마음은 페이스북에만 털어놓고 보고서에는 어떻게 하면 확진자를 줄일지 말하는 게 연구자로서의 의무다. 그래서 내가 지금 '공식적으로' 해야 하는 말이 명확해진다.


"경제보다 방역에 방점을 둔 선제적인 조치가 요구됨(p.19)."


 이 문장은 오랜 고민 끝에 나온 내 진심이었다. 




4. 공동체에 대한 의무


 해외에서 소신껏 하고 싶은 말 다 할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내가 예민한 건지 몰라도 '국책연구원 박사'라는 직책이 주는 무게감에 말과 글을 조심하게 된다. 개인적인 공간에 남기는 글조차 두번 세번 거듭 생각한다(조심하는 게 이 정도). 


 여전히 나는 바이러스 자체보다 그에 대한 우리 반응이 미치는 해악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사람들 사이의 연대가 무너지고 자유의 가치가 하찮아지는 게 두렵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과 경각심 없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에서 나오는 갈등이 안타깝다. 함께 고통을 분담하기보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가장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게 너무나 괴롭다. 


 난제 중의 난제 앞에 나의 역할을 생각한다. 이미 왜곡되어 버린 현실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이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이야기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는 것, 피상적이지 않은 이해를 섬세하게 풀어내는 것이 내가 다해야 할 공동체에 대한 의무다. 


 능력은 희망사항에 턱없이 못 미쳐 오늘도 괴롭지만, 괴로워만 하다 죽을 순 없다는 마음에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간다. 동료 선후배 친구들이 그들의 의무를 다하며 내 부족함을 메워줄 것이라는 믿음에 마음의 부담을 조금 던다.




보고서에 관심 있으시면: http://www.kiep.go.kr/sub/view.do?bbsId=global_econo&nttId=20995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