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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Aug 05. 2019

일본 수출통제에 대하여

경과 요약 및 한국의 대응 평가

  이번 일본의 수출통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제한된 정보에 의한 판단이 반영된 글이므로 새로운 정보가 있을 시 수정될 수 있습니다. 단순하고 선명한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읽기에 별로 재미없으실 수도 있습니다.




1. 경과 요약 (자세한 사항은 전략물자관리원 홈페이지 참조)


일본은 지난 7월 4일 한국에 대한 1차 수출통제를 단행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품목의 수출허가를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바꿈으로써 신청절차가 복잡해지고 (제출서류 2종-> 최대 9종) 심사 대기기간이 늘어났다 (1주->3개월). 덧붙여 허가의 유효기간도 3년에서 6개월로 줄어들었다.


 이어 8월 2일, 일본 국무회의(각의)가 한국을 수출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하였다 (시행은 28일부터). 일명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로 인해 수출통제 범위가 전체 전략물자 1,100여 개 품목으로 확대되었으며 반도체뿐 아니라 화학, 기계, 자동차, 통신 등 수많은 업종이 영향을 받게 된다.


 단, 해당 조치로 인해 전략물자 수입이 완전히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다. 위에 말했듯 개별심사로 전환되어 신청서류와 기간이 달라졌을 뿐 적절한 절차를 거치면 통제 품목들도 수입할 수 있다. 심사 후 허가를 거부하는 것은 명백한 WTO 협정 위반이므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도 수출통제 확대가 한국기업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간소화된 절차에 맞춰져 있던 업무 매뉴얼을 전부 수정해야 하며 신청으로부터 허가까지 기간이 3개월로 늘어 투자/생산계획에 불확실성이 더해질 수 있다. 특히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더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2. 일본이 수출통제를 단행한 이유


 이번 조치로 일본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실익은 전혀 없다고 본다. 오히려 무리한 무역규제는 자국기업에도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촘촘히 짜인 국제 교역체제를 교란시키는 부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출통제를 단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강제징용 배상 판결, 위안부 합의 파기 등등이 많이 언급되지만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이유는 무역관리 상 부적절한 일이 있어 한국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북한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1차 규제 이후 아베 총리는 "강제노역 문제에 대해 한국이 국제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게 명확해졌다. (대북제재 관련) 무역 관리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은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 전후로 자민당 간부들이 에칭가스 대북반출설 등을 제기한 것으로 미뤄보아 일본은 대북 안보문제로 수출 규제를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선거용이든 개헌 동력 확보용이든 일본 입장에서는 한-일간 역사인식 문제보단 북한을 건드리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일반 일본 시민들에겐 지금 자기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미사일이 백 년 전에 있었던 징용문제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질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베 역시 수출통제 조치가 강제징용 문제 등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얘기해 왔다. 그러므로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한일 간 역사인식 차이 문제는 이번 조치와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해당 조치가 남북평화무드에서 시행되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그간 미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도 적대관계 종식을 위한 남북 간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일본만 제외되는 형국이었다. 지분 없이 동북아 평화체제가 구축될 경우, 북한의 위협을 근거로 전쟁가능국 전환을 도모한 일본 보수 진영의 논리에 균이 가게 된다. 일본이 이번 무역제재를 통해 (자국이 비교적 우위에 있는) 경제를 도구 삼아 남북관계에 영향력을 미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029).


 일본이 주장하는 대로 대북 무역관리 미비가 그 원인이라면 이번 수출통제의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일본은 구체적인 제재 위반 사례를 단 한가지도 제시하지 못했다. 비밀 준수 의무를 핑계로 대지만 이처럼 중차대한 경제 통제 사안에 근거를 대지 않는 이유로는 구차하다. 언론과 정부 관계자들에 의해 간접적으로 지목된 에칭가스 북한 유입은 낭설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당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상 일본의 일방적인 경제 제재 조치에 대한 비난은 오롯이 아베 정권이 받아야 할 것이다.



 3. 한국의 대응은 정당한가 (1) - 세계사적 관점에서


  일단 정부와 시민사회에서 이번 경제제재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정부가 수출통제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내부적으로 경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한편 국제무대에서 연대세력을 만들어 일본을 압박할 정도의 배짱은 이전 정권에서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지 싶다.


  김동춘 선생께서 지적한 대로 이번 정권에서 불거진 한일관계의 문제는, 식민시대의 과오를 묵과하는 대가로 개발을 보장받는 지난 100여 년 간의 기형적 체제를 무너뜨리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역사에서 경제적/정치적으로 식민지배 국가에 대등하게 성장한 피식민국가의 예를 생각해내기 어렵다. 특별히 지난 박근혜 정권이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무너지면서 개발과 역사 망각을 맞교환해 온 보수세력의 입지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강경대응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번 정권에서 가속화된 남북한 화해무드 역시 북한의 위협을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해온 한-일 우익세력의 영향력을 약화시킨 요인 중에 하나이다.


  이런 견지에서 일본의 이번 경제제재는 시대착오적이며, 이에 대한 한국의 맞대응은 제국주의-식민지 관계에 대한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일제 하에 자행된 자유의 박탈과 인권유린, 해방 이후에도 지속, 고착화된 반평화 군국주의/전체주의의 잔재들, 이에 더해 반성 없는 역사 왜곡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해왔다. 경제를 볼모로 과거사 청산을 지연하는 일은 이번 정권에서 끝낼 수 있길 바란다. 자존(自尊) 보다 생존(生存)이 우선이라는 말에 동의하지만, 다행히 우리는 자존을 지키면서 생존할 수 있는 위치에 이르렀다.



4. 한국의 대응은 정당한가 (2) -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의 대응에 전부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우리 정부의 과도한 민족주의적 대응이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의병, 이순신 장군, 죽창가, 이적행위, 이번엔 지지 않는다 등 강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반일정서를 자극하는 것이 이번 상황을 풀어가는 가장 현명한 방책인지 의문이 끊임없이 들었다.


 더군다나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뿌리가 권위주의 정부에 대항한 민주화 운동에 있다는 점에서 이번 한일갈등의 해결책으로 파쇼적 민족주의/국가주의 (nationalism)를 내세우는데 깊은 모순을 느꼈다. 이렇게 대응하면 일본의 자민족 우선주의와 다른 점이 없는 것 아닌가?


  요새는 오히려 보수언론에서 탈민족주의의 진보적 목소리가 더 자주 흘러나오고 있다. 그래서 정부 대응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진보와 보수의 연대가 이루어지는 듯하다. 정부의 파쇼적 대응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장부승 교수 같은 경우는 보수/진보지 양쪽에 동일하게 환영받고 있다 (참고).


 이 모순에 대한 해답은, 얼마 전 박노자 교수의 논평에서 힌트를 얻었지만, 웃기게도 내 박사논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잊고 있었음). 요약하자면, "억압하는 민족 (oppressor nations)"과 "억압받는 민족 (oppressed nations)"의 민족주의는 서로 다르게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917년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소련에서 건국 초기 가장 격렬하게 논의되었던 사안은 "민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였다. 제정러시아로부터 물려받은 광대한 영토에는 100여 개가 넘는 민족이 살고 있었다. 만국의 노동자가 국적/인종/민족에 상관없이 단결하는 공산주의 이념 하에 민족을 무시하고 국제주의를 주창할 법 한데, 레닌을 비롯한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오히려 민족 개념을 유지/재정의하고, 자치영토를 지정하여 그 안에서 일정 정도 자치권을 보장해주며, 각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할 수 있는 각종 조치를 취해준다.


 민족을 보존하는데 결정적인 논거를 제공한 것이 바로 억압/피억압 민족의 구분이었다. 제정러시아 하에서 자행된 러시아인 우선주의와 비러시아인 억압 정책은 민족 고유문화를 탄압할 뿐 아니라 러시아인/비러시아인 간 사회경제적 불균형을 가져왔다. 레닌은 이 불균형을 극복하고 진정한 평등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단계로 피억압민족의 민족자결권 (self-determination)을 제시했다. 각 민족의 영토와 자치권, 문화와 교육을 보장함으로써 민족 간 격차를 우선 줄이고, 그 이후에야 사회주의 이상 아래 "소련인"으로서의 통합을 이루겠다는 이론이었다. 하버드 사학자 테리 마틴은, 민족자결권에 기초해 억압받는 민족에게 각종 우대조치를 취한 소련을 세계 역사상 첫번째 "Affirmative Action Empire" (번역 못하겠음)이라고 불렀다.


  소련의 예를 한일 관계에 적용해보면 식민지배국가였던 일본을 "억압하는" 민족으로, 피식민지 한국을 "억압받는" 민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민족주의의 적용은 이 두 범주에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즉, 억압민족이 자국민을 우대하고 피억압민족을 차별하는 류의 민족주의는, 피억압민족이 억압자에 대항하기 위해 민족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민족자결권을 찾아가는 류의 민족주의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군국주의의 부활을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전자라면, 우리나라가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민족국가로서의 단결을 강조하는 것은 후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피억압민족이 억압민족에 대항하는 경우에 한해서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어 보이는 일련의 저항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애초에 억압 자체가 비이성에 기초한 것인데 그에 대한 이성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것도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이나 훙커우 공원에 폭탄을 던진 윤봉길이 감정적이고 폭력적이었다고 쉽게 비난할 수 없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요약하면, 한국의 대응이 다소 민족주의적인 경향을 띄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를 일본의 자국민 우선주의와 단순 비교할 수 없으며, 억압받는 민족으로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 관점에 따라 지금도 여전히 억압받고 있는 - 우리나라에서 민족주의적 반응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5. 맺으며 - 우리가 억압자가 되고 있 않은가

 

 일본의 수출통제가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될 것은 명확하다. 특별히 수출허가 절차가 복잡해지고 대기기간이 길어짐으로써 중소기업이 받는 타격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개발과 과거사 망각을 맞교환해 온 기형적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봐야 한다. 한국경제의 성장, 특히 일본에 의존한 성장은 식민지배 하 인권 유린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채 (흔히 말하는 1965년 한-일 체제 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지속가능성이 낮았다. 이번 경제제재가 직접적으로 과거사를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한국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일본의 영향력 아래 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언젠가는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이제야 갖춰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제재에 대한 한국의 강경한 대응을 대체로 긍정적이라고 보고, 과도한 민족주의적 경향 역시 피억압민족으로서 경험에 기초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평가했다. 국가 차원에서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는데 종종 개인의 희생이 따르기도 하는데 민족주의적 동원이 이를 더 효율적으로 만든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물론 이 방법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비인도적/반평화적 식민지배와 군국주의/전체주의의 잔재, 그리고 역사왜곡이라는 거악에 대항하기 위해 민족주의라는 차악을 디딤돌로 삼자는 것뿐이다. 전자를 극복하고 난 후에야 후자의 문제점을 제대로 직시할 수 있다. 역사는 한 걸음 씩만 전진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발견되는 반자유주의적, 파쇼적 민족주의에 대한 우려를 덧붙이고 싶다. 민족 대 민족의 관계에서 대체로 우리나라가 일본과 비교해 피억압민족에 가깝지만, 정부-시민의 관계나 다수-소수의 관계에서 전자가 억압자의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나서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이적행위로 몰아세우거나, 수적우위를 앞세워 불매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친일파"로 낙인찍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사족으로, 우리나라가 "억압하는" 민족의 범주에 들어갈 때는 없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과거 일제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한국에 온 외국인들을 비인도적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가 (참고). 부품소재 국산화하고 수입다각화에 성공한다고 일본을 극복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다.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배경과 상관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아베의 일본에 대한 진정한 승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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