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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Sep 08. 2019

합리적 의심과 인간에 대한 예의

법무장관 청문회, 그 이후.

합리적 의심, 인간에 대한 예의


 바쁜 가운데 틈틈이 청문회를 봤다. 생방송을 켜자 김도읍 의원이 증인 김형갑 이사에게 질의를 하고 있었다. 김 의원은 조국 선친이 웅동학원 이전을 빌미로 재산을 불리려 "장난질"을 했다고 비난한다. 증인의 다소 불명확한 대답에 이어 표창원 의원이 등장한다. 표 의원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김 의원을 겨냥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고 호통을 친다. 그런데 갑자기,내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울만한 이유가 없는데 왜 이러지. 그냥 울컥한 정도가 아니라 눈물이 줄줄 흘러 한동안 청문회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청문회 주요 장면을 찾아보는데 이번엔 김진태 의원이 나와 조 후보자 딸의 주민번호 문제를 걸고넘어진다. 의전원 입시를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바꾼 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이후 박주민 의원이 나와 반론을 제기한다. 박 의원이 의전원 합격통지서를 흔들며 여기 변경 전 생년월일이 그대로 쓰여있는 게 맞냐며 살짝 목소리를 높인다. 그때, 또 눈물이 났다.


 이번엔 동양대 표창장 관련이다. 박주민 의원이 이번엔 봉사활동 담당교수가 보낸 문자를 공개한다. 영어 지도활동은 동양대가 낙후 지역 교육 수준 향상을 위해 기획한 일이란다. 주변에서 사람을 못 구할 때 조 후보자 딸이 일부러 지방까지 내려와 도운 점을 기특하게 생각했는데, 그 의미 있는 일을 "스펙을 만들기 위한 작전" 정도로 여기는 것이 안타깝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박 의원이 이 문자를 읽는 중 세번째 눈물이 터졌다 (내가 원래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아들 태어날 때도 안 울었다).


 그 이후로 몇 장면을 더 봤는데 거의 같은 내용 반복이라 그만두었다. 그리고 내가 왜 눈물이 났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조 후보자 개인에 대해선 예전에도 지금도 잘 모른다. 법무부장관이 누가 되는지도 내 관심사는 아니다. 그런데 나는 몇 주간이나 이 사건에 꽤나 몰두해 있었다. 어느 순간에 눈물이 터져 나올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간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의 결여였다. 조 후보자와 그 가족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조금만 확인하면 사실이 아니라고 알 수 있는, 실제 법무장관 임무수행과는 아무 상관없는, 그런 비난들이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고 느꼈다.


 해명하고 또 해명해도 사실을 교묘하게 엮어 거짓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언론과 보수당과 검찰의 이례적인 연합에 여당 성향인 나도 몇 번이나 마음이 돌아섰다.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들이 빠르게 배포되어 의혹을 증폭시켰다. 사모펀드 관련, 아들 군입대 관련, 딸 장학금 관련, 입시 전형 관련, 성적 관련, 인턴 관련, 증거 인멸 관련, 자료 한두개면 쉽게 해명될 수 있는 문제들이 마치 사실인양 부풀려져 터져 나왔다. 이 중 해소되지 않은 의혹으로 남아있는 게 몇 개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해명이 아무리 타당해도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된 첫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주로 쓰는 단어는 '합리적 의심(reasonable suspicion)'이다.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개연성 있는 추론을 했다는 것이다. 고교생이 학술논문의 제1저자가 될 가능성이 극히 낮고 해당 논문의 책임저자가 후보자와 같은 학교 학부형이라는 이유로 어떤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 추론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얘기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법률 용어로서 합리적 의심(reasonable doubt)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도 사용된다. 자백이나 직접증거가 없을 때, 어떤 사람이 유죄가 아닐 가능성이 단 1%라도 있다고 의심되면 판사는 무죄 판결을 내린다. 총장이 직인을 찍어주지 않았다는 사실 만으로 후보자의 배우자가 사문서를 위조했다는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총장이 위임을 하고 기억을 못 할 수도, 직접 결재하지 않는 서류가 있었을 수도, 후보자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위조를 했을 수도 있다. 여러가지 합리적 의심이 존재할 때 함부로 죄를 확정해서는 안 된다.


 법적 판단에 "합리적 의심을 뛰어넘는 증명"이라는 다소 엄격한 원칙을 적용하는 이유는 백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단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단죄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민주주의 체제 하에선 범죄의 처벌보다 국가권력의 임의적 법집행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 더 우선적인 목표이다. 사회구성원이 합의한 엄정한 절차에 의해서만 죄인을 가려낼 수 있게 만들어 인간의 존엄을 최대한 지키게 한다. "합리적 의심을 뛰어넘는 증명"의 의무도 그 절차 중 하나이다.


 의혹만으로 사람을 정죄하는 것은 권력자가 임의로 시민들의 죄를 묻던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언론이 옛 권력자의 자리를 꿰차고 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참담한 과정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꽤나 무거웠다. 의혹이 확정된 것처럼 후보자와 후보자 가족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고역이었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서서 같이 돌을 던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수백 년간 쌓아왔던 법치의 발전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 같이 느껴졌다.


 청문회를 보며 눈물이 터져 나왔던 것은 아마도, 그 세 장면에서 이 광기를 멈출 수 있는 합리적 의심(reasonable doubt)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조 후보자의 선친이 재산증식을 목적으로 학교 부지를 옮기지 않았을 수도 있어. 조 후보자 딸이 합격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 생년월일을 바꾼 게 아닐 수 있어. 스펙을 쌓기 위해 표창장을 위조한 게 아닐 수도 있어. 합리적 의심을 뛰어넘는 증명을 하게 되기까지 우리는 누구도 정죄할 수 없어.'


 실제 진실이 무엇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진실을 찾아가기 위해, 그리고 진실 없이 개인을 단죄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구나, 그 안도감에 마음이 부드러워졌던 것 같다. 우리가 아직 인간에 대한 예의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니구나, 그 희망에 감격했던 것 같다. 몇주간 나를 무겁게 짓눌렀던 절망이 다소간 해소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청문회가 끝나고 다시 보니 여전히 광기는 멈추지 않은 듯하다. 한편에선 절차적 정당성을 따지지 않고 한 사람을 기소해 버리고, 다른 한편에선 확인되지 않은 무차별적 의혹 제기로 상대편을 공격하고 있다.


 각자 선 자리에서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거듭된 의혹 제기에도 그 사람은 유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그게 법치의 토대 위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고, 언제간 어느 광기의 희생양이 될 지 모르는 나와 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길이라 믿는다.


 이 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많지 않으시겠지만 이 글의 내용에 동의하신다면 어떤 사안에 대한 판단에 앞서 "합리적 의심"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주시길 부탁드린다. 물론, 나만 잘하면 된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덧1. 이 글이 후보자에 대한 옹호로 읽히지 않기 바람. 해소된 의혹 이외에도 문제가 많다고 여기고 무엇보다 업무수행 능력에 대한 판단은 청문회 이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음. 이 글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금태섭 의원, 채이배 의원의 질의가 판단에 큰 도움이 되었음.


덧2. "합리적 의심을 뛰어넘는 증명"에 대해 단순화시킨 부분이 있는데 법 전공하신 분들은 양해해 주시길. 심각한 오류는 지적해주시면 감사.


덧3. 생각해보니 작년에 판문점 선언 보면서도 울컥했었음. 울음 포인트가 다를 뿐 내가 의외로 눈물이 많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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