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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Sep 15. 2019

확증편향에서 벗어나기 위한 팁

장제원 의원 아들 사건 평가


 학자에게 확증편향은 쥐약과도 같다. 본인 신념에 맞게 자료를 취사해 지은 일방적인 주장으론 상대편을 설득할 수 없다. 반론에 대한 검토는 필수이다. 양쪽의 근거를 고루 재어봐야 한다. 


 하지만 어떤 신념이 이미 형성된 경우 양 편을 균형 있게 살펴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컴퓨터가 아닌 이상 내가 믿는 쪽으로 마음이 쏠리게 되어 있다. 심리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스스로 편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실제 판단은 개선되지 않는다고 밝혀냈다. 오히려 인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편향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는 결과도 있었다 (주1).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과학 연구방법론에 두 가지 특별한 장치가 심어져 있다. 

 

첫 번째 장치는 내가 생각하는 가설(H)을 직접 테스트하는 대신 그 가설의 부정(H0: 귀무가설)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H를 증명해내고 싶은 마음이 이미 있는 상태에선 H가 옳다는 증거만 수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부러 H0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들을 찾아내도록 연구를 디자인한 것이다 (좀 복잡하다). 


 그래서 H0가 옳을 수 있다는 증거가 하나라도 나오면 본래 가설 H를 참이라고 결론 내릴 수 없다. H0가 옳다는 증거가 없을 경우에만 H를 받아들일 수 있는데, 어떤 깐깐한 사람들은 이 경우에도 H0를 기각한 것이지 H를 채택한 건 아니다고 말한다 (적당히 좀 해라). 


 간단한 예로 내가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에 도움이 된다"라는 가설(H)을 증명하려 한다고 치자. 나는 기업이윤에 비해 노동자 임금이 너무 낮다고 생각하므로 H가 사실이라고 믿고 싶은 확증편향이 있다. 그래서 나는 대신 "최저임금 상승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귀무가설(H0)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모은다. 경제성장률,  민간 소비율, 자영업자 폐업률, 고용률 등등이 올랐는지 내렸는지 알아보고 최저임금 외에 다른 요소(ex. 미중 무역 분쟁, 건설경기 후퇴, 임대료 급증, 노령화  등등)가 이들에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이 모든 조건이 동일할 때도 최저임금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확인이 있어야만 H0를 기각하고 H를 채택할 수 있다. 


 요약하면, 내가 생각하는 신념과 반대되는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반증하려는 노력을 함으로써 확증편향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두 번째 장치는 내 연구의 결론이 틀리는 경우 발생하는 오류의 종류를 둘로 나누고 그중 더 심각한 오류가 생길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쓸데없이 엄밀함). 


 아래 첨부한 표를 보면 1종 오류와 2종 오류가 있다. 최저임금이 실제론 아무 영향이 없는데 (H0 True)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결론을 내리면 (reject H0) 1종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반대로 최저임금이 도움이 되는데 (H0 False) 그걸 밝혀내지 못하는 게 (fail to reject H0) 2종 오류다. 요컨대 거짓을 진실이라고 하는 게 1종 오류,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는 게 2종 오류인 셈이다. 



 학자들은 이 중 1종 오류를 더 심각한 오류로 본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낫지 틀린 걸 맞다고 우기는 게 더 큰 해악을 가져온다는 뜻이다. 확증편향이 클수록 1종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가설을 검정할 때 1종 오류의 확률을 최소한으로 묶어 놓은 상태에서 2종 오류를 줄이는 방법을 모색한다. 유의수준 1%, 5% 하는 게 최소한으로 맞춰 놓은 1종 오류 확률이다 (ex. 예전 인스타 좋아요 글에서 별 세 개가 1%, 별 두 개가 5%). 


  이 두 가지 장치는 법정에서도 사용된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합리적 의심을 뛰어넘는 증명"이 그 예이다. 죄가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기소를 했어도 피의자가 무죄임을 가정한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한다. 무죄인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게(1종 오류) 유죄를 입증해내지 못하는 것(2종 오류) 보다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 피의자가 무죄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들을 먼저 찾고, 무죄일 가능성이 완전히 제거될 때에만 유죄를 선고한다. 기소된 피의자는 유죄일 것이라는 편견이 확증편향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꼭 법정에서가 아니더라도 어떤 사안이나 인물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이 장치들은 꽤 유용하게 사용된다. 요새 이슈가 되는 한 사건에 오늘 글에 나온 원칙들을 적용해 보았다. 장제원 의원 아들 장용준 씨 음주운전 사건이다 (연예인이니까 본명 밝혀도 될 듯). 아들이 물의를 일으켰으니 장제원 의원은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사퇴해야 할까?


 일단 장용준 씨가 음주운전 사고를 낸 것은 의심할 필요 없는 사실이다. 음주측정 결과와 CCTV 영상이 있는 데다가 본인이 인정했으니 유죄 입증의 직접증거가 있는 셈이다. CCTV가 조작됐다거나 누가 그 짧은 시간에 고문을 해서 자백하게 했다는 등 반론이 가능하지만 이를 "합리적" 의심으로 볼 순 없다.


 문제는 장제원 의원이 책임져야 할 일이 있는가 이다. 만약 장 의원이 본인의 권력을 이용해 이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을 했다면 국회의원 사퇴는 물론 형사 상의 처벌도 받아야 할 것이다. 나는 자한당 의원은 전체적으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개입이 사실이라는 쪽으로 확증편향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장 의원이 개입을 안 했다는 가설(H0)을 세우고 이에 대한 증거를 모아야 한다. 


 의외로 이 가설을 반박하기 쉽지 않다. 의원실이 운전자 바꿔치기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었다. 실제 운전자 바꿔치기 의혹도 장용준 씨 본인의 인정으로 사실로 드러났다. 하지만 사고 현장에 나타나 자신이 운전했다고 진술한 사람은 친한 형이지 의원실과 관련된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이 "친한 형"과 장제원 의원 사이의 커넥션을 찾지 못하면 장 의원의 개입은 입증할 수 없다. 아직까진 아무것도 안 밝혀진 걸로 알고 있다. 


 장 의원이 아니라 장 의원의 배우자가 개입했다면? 실제로 용준 씨의 어머니가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합의를 통해 민형사 상 책임을 피하는 것은 법에 명시된 가해자의 권리이다. 어머니가 피해자에게 사건을 덮어달라고 했다는 보도는 대충 봐도 오보이다. 녹취만 들어 봐도 덮어 달라는 말은 용준 씨가 했고 어머니는 죄송하다고만 했다. 어머니가 책임 질 일도 없어 보인다. 


 새로운 사실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장 의원, 혹은 배우자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가설을 기각할 증거가 없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에서 장제원 의원의 책임을 강조하고자 했던 나의 작은 희망은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내가 이렇게 확증편향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지만, 당연히 완벽하진 않다. 그냥 내 한계를 인정하고, 내 의견에 오류가 있음을 인지한 상태에서, 상대편의 비판에 귀 기울이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글 읽으시는 분들이 마음 상하는 거 염려하지 말고 좀 날카롭게 지적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잠깐 기분 상하는 것보다 내가 다 맞다고 착각하며 사는 게 나에겐 더 괴로운 일이다. 


 학자, 교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이런 오류에서 자유롭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본다. 심지어 상대의 확증편향을 지적하는 사람이 자기 글에서 심각한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노출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이 생산한 정보를 수용, 평가할 때 인간은 누구나 인지적 편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당연히 내 글도 마찬가지다. 




(주1) 그러니까 어디 가서 본인은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이라고 자랑하고 다니면 안 된다. 참고: West, R. F., Meserve, R. J., & Stanovich, K. E. (2012). Cognitive sophistication does not attenuate the bias blind spo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3(3),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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