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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Sep 18. 2019

사회정의를 위한 전국교수모임에 요구합니다

정교모 시국선언서 작성자에게 보내는 네가지 요구사항

* 사회정의를 위한 전국교수모임 (정교모) 시국선언서 전문 (링크)



 안녕하세요 교수님들,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고가 많으십니다. 법무장관 임명 건으로 어지러운 나라의 현실에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만 시국선언문을 읽으며 의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번 임명 건으로 불거진 사회문제의 가장 큰 책임이 대학교수 집단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과 성찰은 보이지 않습니다. 조국 장관 개인의 의혹에만 집중하며 그 뒤에 숨어있는 계층 간 불평등의 문제, 교육을 통한 부의 세습 문제, 불공정 경쟁의 문제, 언론의 문제, 검찰의 문제를 폭넓게 조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아 부정확한 주장을 한 경우도 많습니다. 일반 국민이 동의하는 사회정의 및 윤리라는 다소 모호한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함에 따라 마치 정의와 윤리에 단 하나의 기준만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각자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따라 자유롭게 학문을 추구하는 연구자 집단에서 나온 선언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편향된 표현으로 보였습니다. 



 이에 아래 네 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합니다. 


 첫째, 대학교수 집단의 반성과 성찰이 무엇보다 필요함을 적시하여 주십시오. 부당한 장학금 지급과 고교생 논문이 문제가 된다면, 이는 다른 어떤 이의 잘못이 아닌 교수집단의 잘못입니다. 장학금을 지급한 것도 해당 학생의 지도교수였고, 논문의 1 저자를 정한 것도 지도교수입니다. 의학논문에 필수인 IRB 승인을 제대로 받지 않아 논문이 취소된 것은 조국 장관도, 그 딸도 아닌 해당논문 교신저자의 책임입니다. 연구윤리를 위반하고 엄격한 기준에 의해 1 저자를 선정하지 않은 것도 교수이고, 그 논문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해 "국제적인 수준"의 학술지에 게재하게 한 것도 동료 교수들입니다. 


 또한 고교생이 논문의 1 저자가 된 것이 수년간 피땀 흘려 논문을 쓰는 석박사 과정생을 조롱한 것이라 하는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간과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아이디어와 노력을 가로채 자신의 연구실적을 쌓는 교수들의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었음에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석박사 생들을 괴롭히는 것은 언어전, 신체적, 성적 폭력과 사적 노동 요구, 저작권 편취 등 교수의 갑질이지 조국 장관이 아닙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교수들이 외치는 사회정의와 윤리는 공허한 것이 될 것입니다. 



 둘째, 조국 장관 임명 건에서 드러난 사회문제를 폭넓게 조명하고 대안을 제시해 주십시오. 국가가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데 실패함에 따라 저소득계층은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며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반면 기득권 층은 각종 특혜와 특권을 활용해 부와 지위를 대물림하고 있음이 이번 사태를 통해 더 명확해졌습니다. 이 불평등은 불공정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애초에 출발선이 다른 상태에선 아무리 좋은 규칙이 있더라도 공정한 경쟁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이러한 사회문제를 적극 해결해야 할 소위 “진보” 정치인들도 역시 기득권의 일부였다는 사실에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조국 장관 개인의 퇴진은 이 거시적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불법과 편법으로 게임의 룰을 훼손하지 못하게 법망의 감시를 공고히 하는 한편,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평등과 불공정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입시 포함 사회제도 전반을 어떻게 정비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성명서의 목적이 아닐지라도 사회정의와 윤리를 세워달라는 모호한 주장 이상의 선언이 필요해 보입니다. 



 셋째, 조국 장관, 청와대, 검찰의 책임을 묻기 전에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을 먼저 해 주십시오. 온갖 비리의 의혹을 받는 것과 그 의혹이 사실인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의 지위와 인맥을 이용하여 대학교 관련 기관에서 쇼핑하듯 부정직하게 스펙을 쌓아 자녀를 대학과 대학원에 입학시켰으며"에서 부정직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50억 이상의 재산을 가진 서울대 교수 자녀이면서도 과도한 장학금을 받도록 하였다"에서 장학금을 받게 한 것은 조국 장관이 아니라 동문 장학회와 의전원의 교수입니다. "조국 교수는 딸이 불과 2주의 인턴 생활로 국제학술지 수준의 논문에 제1저자가 되도록 하였다"에서 1 저자가 되게 한 것은 단국대 교수이지 조국 장관이 아닙니다.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는 불의하면서도 비윤리적인 모습을 보였다"에서 조국 장관은 다 자기 책임이라고 여러 번 인정하였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정치적 의사표시로는 가능하지만 학문의 엄밀성을 추구하고 진리는 탐구하는 연구자들의 올바른 자세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의혹이 제기된 사실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있습니다. 검찰 개혁을 추진하는데 본인과 가족의 수사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고, 이로 인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개혁을 하기 어렵게 됩니다. 비리를 확정 지은 듯한 문장을 제거하고 의혹을 받는 것 자체의 문제점을 제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검찰이 법무부 장관의 입김과 무관하게 모든 의혹을 철저히 수사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내용이 성명서에 들어가야 합니다. 



 넷째, 하나의 정의, 하나의 윤리를 강요하는 듯한 문장을 삭제하고 사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지지함을 명시하여 주십시오.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는 사회정의 및 윤리와 맞지 않은 생각을 가진 자", "다양한 생각과 주장이 존재함에도 사회정의와 윤리가 살아있으면", "사회정의와 윤리를 세우며 국민적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사람" 등의 표현은 마치 특정한 가치관만 사회정의와 윤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전체주의적 사고를 드러내는 듯합니다. 또한 “내심으로 사회주의자를 신봉하는 자”가 개혁을 감당할 수 없다는 식의 문장은, 정치인들이 수사적으로 쓰는 표현이지 사상의 자유를 추구하는 학자들이 쓸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사회개혁은 전방위적으로 일어나야 하고 모든 학문의 사조는 이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조국 장관이 내세우는 개혁은 사회주의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법개혁입니다. 조국 장관의 검찰 개혁 방향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지적해야지 "내심으로" 신봉하는 이데올로기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조국 장관의 퇴진보다 사회 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이 대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요구사항이 선언서에 반영될 경우 기꺼이 저의 지지를 보낼 생각입니다. 교수 사회가 또 다른 엘리트 집단이 되어 제 기득권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잘못된 부분은 성찰하고 반성하며, 그에 맞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를, 해외에 나와 있지만 늘 나라를 걱정하는 연구자의 한 명으로서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다시 한번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남아공 스텔렌보쉬대학

장영욱 드림


추신. 시국선언서에 있는 비문들은 빠른 시일 내에 교정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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