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 육아 편
오늘은 출산 / 육아 관련이다. 이번 편은 주로 경험에 의존하여 썼다. 도준이는 영국에서 태어나 갓 돌 지날 때까지 영국에 있었고, 그 후 한국에 2개월, 남아공에 약 6개월 정도 살았다 (자꾸 데리고 다녀서 미안해...). 출산 경험은 영국에서만 있기 때문에 남아공과는 비교하진 못했다. 두 나라 간 비교는 영유아의 육아부터 했다.
일단 출생. 이전 편에 얘기했듯 영국은 완전 무상의료이다. 그래서 출산도 돈이 들지 않는다. 돈을 안 낸다고 잘 안 해주냐, 전혀 그렇지 않다. 임신부터 출산, 그리고 출산 후 회복되기까지 GP와 병원 산부인과, 지역 아동복지센터에서 삼중으로 꼼꼼하게 관리해준다.
(참고로 GP는 동네에 있는 주치의 개념으로 간단한 병은 직접 진료, 처방하고 큰 병은 종합병원으로 보내줌. 아동복지센터는 각 지역에 하나씩 있는 정부 보조 기관으로 임산부와 5세 미만 아동에 각종 프로그램 제공)
일단 임신을 하면 그때부터 이 세군데서 주기적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GP에서는 간단한 산모의 건강체크를 해주고 산부인과에서는 전문장비가 필요한 검사 (초음파 등)를 주로 한다. 아동복지센터에 가면 midwife (조산사와 간호사 사이)들이 아기 낳기 전에 준비할 점과 육아 방법 등을 알려준다. 초음파 검사는 별 문제가 없을 시 임신 중 딱 두번만 해준다. 대신 midwife들이 손으로 배 둘레를 재면서 아이가 잘 성장하고 있는지 체크해 준다 (약간 원시적...). 근데 우리 경우는 태반 위치에 문제가 있어서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초음파 검사를 해줬다. 잘 자라는 아이에게 초음파로 스트레스 주지 않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해준다. 과잉진료는 없다는 얘기.
출산 역시 아주 편안하게 진행했다. 출산일이 다가오면 어디에서 아이를 낳을지 결정해야 한다. 전문의 병동, miwife 병동, 집 세가지 옵션이 있다. 의사 없이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것도 신선한데 집에서 낳는 옵션이 있다니 충격이었다. 심지어 많이들 그렇게 한다고. 산모와 가족이 가장 편안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안전하게 전문의 병동에서 낳기로 했다. 진통 주기가 짧아지면 분만실로 가서 출산을 준비하는데... 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 하나만 추가하면, 무통주사는 무제한으로 놔준다. 공짜니까 좀 아파질 만하면 계속 놔달라고 했다 (물론 아내가).
출산 이후 입원기간은 길지 않고 산후조리 개념도 따로 없지만, midwife들이 정기적으로 집에 찾아와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체크해준다. 이 가정방문은 집이 아기를 키울만한 환경이 되는지 점검하는 목적도 같이 있다. 침대 위치가 어떤지, 가구배치가 어떤지 꼼꼼하게 보고 조언해준다. 산모가 어느정도 회복되면 아동복지센터에서 부른다. 아이 몸무게도 재고 산모 상태도 봐주고 수유하는 법이나 아이와 애착 형성하는 법 등도 알려준다. 그리고 예방접종. 동네 GP에 가서 때마다 필요한 예방접종을 맞는다.
이 모든 과정이 전부 무료. 정확하게 말하면 건강보험료를 미리 내고 진료 시 치료비를 면제받는 것이다. 나도 학교에서 일하고 받는 돈 일부를 보험료로 냈다. 물론 출산하고 몇 번 아파서 병원 갔을 때 내야 했던 돈에 비하면 보험료는 아무것도 아니다. 요즘에 외국인은 비자신청 시 의료보험료를 따로 낸다 (1인 1년에 60만원). 다행히 내가 비자신청할 땐 이런 제도가 없었다. 영국 유학하면서 생활비에 등록금에 돈 많이 썼는데, 아이 공짜로 나면서 조금 만회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남아공과 영국을 비교해보겠다.
영국이나 남아공이나 애기 키우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이다. 특히 아기가 유치원에 가기 전에는 부모가 전적으로 아이를 맡아 키워야 하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 있는지 보다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가 더 중요한 듯하다. 참고로 영국은 만 3세부터 주 15시간씩 무료로 어린이집에 갈 수 있으며 남아공은 초등학교 입학 전엔 따로 무상교육 혜택이 없다. 남아공 어린이집 비용은 월 10-15만원 정도 (소득 대비 무지 비싼거...)
영유아의 육아가 부모 손에 달렸다 하더라도 정부나 지역사회에서 짐을 덜어주는 방법은 있다. 영국 같은 경우는 아동복지센터에서 무료로 영유아를 위한 플레이그룹을 운영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문화센터에서 하는 수업이랑 비슷할 것 같다. 강좌가 매일 개설되며 연령별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서 시기에 맞게 참여하면 된다 (한번에 1시간-1시간 반). 6개월 미만 아이의 경우는 주로 부모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많이 있고 끝나고 간단한 다과도 제공해줘서 부모들끼리 만나서 얘기하는 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아동복지센터뿐 아니라 지역 교회에서도 저렴한 비용으로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회 2-3천원). 도준이 6개월 정도 되고부터는 아내가 거의 매일 플레이그룹에 데리고 나갔다.
남아공도 비슷한 플레이그룹들이 있다. 영국에서 온 백인들이 많아서 그런지 운영 방식이나 퀄리티가 영국과 거의 유사한 곳도 있다. 문제는 전부 사설로 운영하는 곳이라 비용이 훨씬 비싸다는 것. 한번 갈 때 만원 정도 내야 하는데, 영국과 남아공 소득 차이를 생각할 때 부담이 만만치 않다. 플레이그룹오는 사람은 거의 백퍼센트 백인인데, 이 곳의 불평등 정도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또 영국에 있을 때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중고용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기 옷이나 중고용품이라는 게 잠깐 쓰고 마는 것이라 새 걸로 다 구입하기가 아깝다. 영국에선 주변에 애기 있는 한국, 영국 친구들이 꽤 있어서 많이 물려받고 물려주고 했었다. 그리고 동네마다 채러티 샵 (charity shop, 물건을 기부받아 파는 매장)이 기본 서너개는 있는데, 여기가 정말 유용하다. 아기침대나 보행기부터 장난감까지 다양한 중고 아기용품을 정말 저렴한 값에 판다. 영국은 워낙 기부문화가 잘 되어있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자선단체들이 많아서 아동용품뿐 아니라 의류나 일반 생활용품들도 이런 채러티 샵을 통해 많이 구입할 수 있다. 아내의 몇 안 되는 취미생활 중 하나가 플레이그룹 다녀오는 길에 채러티 샵 몇 군데 둘러보면서 쇼핑하기였다.
남아공에서는 이런 종류의 채러티 샵은 흔하지 않은 것 같다. 들은 얘기로는 과거 전염병이나 위생 상의 이유로 물품을 기부하고 소비하는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고 거래는 주로 지역 커뮤니티나 아는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지역 별로 소득 수준 차이가 많이 나고 소비하는 물품의 가격도 차이가 나니 지역 간 중고거래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사람들 단체카톡방이 있어서 아기 물건을 중고로 몇개 산 적이 있지만 그게 전부이다. 중고라고 그렇게 저렴하지도 않은데, 아무래도 공급이 적어서 그럴 수밖에 없지 싶다. 새 거는 소득 대비 비싸지, 중고는 별로 없지, 남아공에서는 아기 물건을 많이 못 사다가 이번에 영국 다녀올 때 채러티에서 아기 장난감을 거의 쓸어오다시피 했다 (근데 애기는 역시 금방 질림...).
마지막으로 아빠의 육아참여에 대해서 간단하게 언급하려 한다. 육아는 부모가 공동으로 하는 것이지만 세계 어딜 가나 엄마가 더 큰 부담을 지는 것이 보통이다. 사회구조와 문화에 따라 아빠가 얼마나 육아에 참여해줄 수 있는지가 달라질 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아공보다는 영국이 남성 육아 참여율이 더 높다. 영국에선 주말에 아이들이 대부분 엄마 없이 아빠와 놀러 나오고, 주중에도 플레이그룹에 부모가 같이 오거나 아빠만 오는 경우들을 꽤 많이 봤다. 남자나 여자나 원하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제도, 문화가 잘 갖춰져 있고, 어린 아기가 있는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거나 재택근무를 하게 해 준 덕분이다.
샘플이 많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남아공은 영국에 비해 가부장적인 면이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백인들은 좀 덜한 편이다. 직장에선 영국과 마찬가지로 육아에 참여해 줄 수 있게 배려를 많이 해주는 것 같다. 나도 가끔 도준이를 플레이그룹에 데리고 가는데 다른 아빠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런다. 단, 비백인은 많은 경우 예전 한국과 유사하여 여성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한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영국에서는 여러가지 면에서 아기 키우기가 비교적 수월했다. 부모가 둘 다 육아에 참여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지원해주고, 그러면서 정부와 지역사회 (주로 교회)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소득에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 물건도 나눠쓰니 아이를 모두가 함께 키운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 글에 언급했듯 의료도 무상을 제공되어 육아를 하는데에 재정적인 부담은 크지 않았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사립병원이나 사설 플레이그룹 (짐보리 등)에 보내고 물건도 새 걸로 사겠지만, 나 같은 유학생도 크게 불만 없이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이전 물가/생활비 편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 남아공은 돈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의 차이가 너무 크다. 아이가 누릴 수 있는 삶의 수준이 부모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과 남아공의 차이는 결국 복지 시스템으로 결정된다. 이건 단순히 애기를 낳았을 때 돈을 얼마나 주느냐의 문제만은 아니다. 정부와 사회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육아의 문제를 사회 공동의 문제로 받아들일 것인지, 그리고 거기에 따라 제도를 정비하고 재정을 투입할 의사가 있는지에 대한 합의가 우선이다. 영국 등 유럽 선진국들에는 이미 오래전에 이런 합의를 이루고 그 토대 위에 복지 시스템을 발전시켜왔다. 출산율을 기계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육아 대책이 아니라,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부모의 짐을 사회가 나눠지는 제도를 갖추는 것이 선진국의 필수 조건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이번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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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1. 복지 시스템은 물론 공짜로 갖춰지는 게 아니며, 그 유지에도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영국의 브렉시트를 가져온 최대 쟁점 중 하나는 이민자에게 제공되는 복지 (특히 NHS)였다. 사회가 각 구성원의 짐을 나눠지는 것 까진 이해했는데, 밀려드는 이민자/난민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줄 것인지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쉬운 문제는 아니다.
덧 2. 출산율이 높은 게 AI시대에 꼭 좋은 건 아니라는 경제학자들의 분석이 있음. 관심 있으면 다음 링크 찾아보길. 번역은 안 되어 있는 듯. https://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automation-favors-shrinking-populations-by-adair-turner-20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