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9일 영국 의회의 승인, 23일 여왕의 재가를 거쳐 어제 유럽의회에서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정을 최종 승인했다. 협정 내용에 따라 바로 내일인 1월 31일 오후 11시(영국시간)부터 영국은 EU 회원국 지위를 상실한다. 1973년 영국이 EU(당시 EEC)에 가입한 지 47년 만에, 2016년 국민투표에서 EU를 떠나기로 한지 3년 7개월 만에 실제 브렉시트가 단행되는 것이다.
EU를 탈퇴한다고 영국과 EU의 관계가 당장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11개월 간 이행기(transition period)를 가지며 무역과 각종 법규 관련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 영국-EU 간의 기존 관계는 2020년 12월 31일이 되어야 끝을 맺는다.
브렉시트가 경제에 미친 영향은 대체로 부정적일 것으로 보인다. 2016년 국민투표가 없을 경우를 가정하고 계산한 경제성장률과 실제 경제성장률을 비교한 한 연구는 브렉시트 결정으로 3년 간 누적손실이 GDP의 2.1%인 약 500억 파운드(77조 원)로 1주일에 3,500만 파운드(5,370억 원)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추계했다. 브렉시트의 장기적인 영향을 계산한 여러 연구들 역시 시나리오에 따라 향후 10년 간 손실이 GDP의 3.9%에서 8.7%에 이를 것이라 예측했다(출처가 궁금하면 pm 주시길).
장단기적으로 이득보다 손해가 더 큰 브렉시트에 찬성한 사람이 더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
많은 경제학자들은 세계화 이후 부의 재분배 문제에 주목한다. 자유무역 확대와 노동이동의 증가로 대표되는 세계화는 참여 국가 모두의 평균적인 생활수준을 높이지만 항상 승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저렴한 제조품과 동유럽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영국에 유입됨에 따라 농업/제조업에 종사하는 비숙련 노동자의 소득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고난이 찾아오면 남 탓을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불평등이 심해지고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화살이 무관세 수입과 EU 내 이민자들을 향했다. 보호무역과 이민자 통제를 통해 자국민들의 수입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고 EU 탈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극우로 분류되는 영국독립당(UKIP)이 정확히 이 지점을 파고들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보수당은 급기야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약속해 버리고 만다.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나온 브렉시트 투표가 실제로 반세기 간 이어져 온 영국과 EU의 관계를 끊어버릴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UKIP과 보수당의 강경론자들은 자유무역과 이민자에 대한 공격을 계속했고, 과반 이상의 영국 시민이 이에 호응했다.
투표 원인을 분석한 연구를 보면, 제조업 고용 감소 지역, 경제성장률이 낮은 지역, 무역의존도가 큰 지역, 소득 불균형이 커진 지역에서 브렉시트 찬성 비율이 높게 나왔다. 개인 수준의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선 스스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했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질 확률이 증가했다. 내부의 고통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무역을 포기하고 이민자 유입을 전면 금지하는 것으론 패자들이 겪는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 심화에 대한 적절한 대안은 사실 복지의 확대이다. 승자들의 이익을 일부 환수해 패자들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것이 시장실패로 인해 야기되는 불평등 문제에 대한 교과서적인 해답이다. 배제가 아닌 연대가 모두를 잘 살게 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안타깝게도 2000년 대 말부터 이어진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로 영국은 정부지출을 증가할 여력이 없었다. 2010년부터 집권한 보수당은 오히려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긴축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세금을 늘리는 대신 공공지출을 줄였고,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은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최선책을 실행할 능력이 없는 정치인들은 외부의 적을 만들어 비난하는 최악의 선택을 한다. 그 결과는 3년 7개월 간 영국을 불확실성에 밀어 넣은 브렉시트 결정과,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지 모르는 고립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다 (물론 이행기 동안 협상을 통해 EU에 준하는 자유무역협정을 맺을 수도 있다. 근데 보리스 존슨이 하는 걸로 봐선 어렵지 않을까 싶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이다. 관계 당국과 일반 시민들의 적절한 대처로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파급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일부 몰지각한 언론/유사언론이 조장하는 공포와 혐오, 그로 인해 파생되는 폭력과 이기주의에는 눈살이 찌푸려진다.
감염자 수나 감염경로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넘친다. 그리고 부정확한 정부는 외부의 적에 대한 편견과 혐오로 이어진다. 미지의 바이러스와 싸우는데 힘을 보태야 할 야권 정치인들은 현 정부를 어떻게든 깎아내리기 위해 명분도 실익도 없는 대책을 내세운다. 공포와 불안을 증폭시키는 무책임한 선동에 동조하는 시민들도 일부 있는 듯하다. 대표적인 게 중국인 입국 금지와 우한 교민 수용시설 반대이다.
나는 공포심이 인류의 생존에 필수 조건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병원균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고 외출을 자제하는 것은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에는 정의 외부효과가 있어서 인류 전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치사율도 낮고 자가 회복이 가능하다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문제는 공포가 방향을 잘못 잡을 때이다. 중국인 전체를 향한 혐오로 부정확한 정보를 생산하거나 정신적,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생존의 확률을 올리는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니다. 감염 의심자를 향해 과도한 비난을 가하는 것 역시 감염자가 증상을 숨기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게 해 오히려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올리는 부적절한 대응이다.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배제가 아니라 연대이다. 내부에 문제가 생기면 외부에서 원인을 찾기보다 연대와 협력을 통해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어떤 이슈를 핑계로 외부의 적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은 문제의 해결보다 자기의 이득을 취할 목적에 더 관심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는 마치 변종을 거듭해 다시 나타나는 바이러스와 같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연대 대신 혐오와 배제를 제시하는 정치인들이 영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기승을 부리는 중이다. 그러나 혐오와 배제는 거의 항상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시장과 정부가 보완재가 되어 성장의 그늘에 소외받은 자들을 돌아보는 것이 장기적으로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길이다. 이를 위해선 근시안적인 이기주의는 잠시 내려 놓을 필요가 있다. 연대는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