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간다는 것
2019. 3. 17
얼마 안 됐지만 남아공에 살면서 몇가지 좋은 점이 있다 (물론 나쁜 점도 많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경치와 날씨는 정말 최고. 첩첩이 둘러 싼 바위산과 깨끗한 하늘은 매일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또 하나 한국에서 누리지 못할 축복이라 생각되는 것은 이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다양성이다. 특히 이제 한살 반 된 도준이가 남아공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득 차는 느낌이다.
남아공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민족이 모여사는 나라 중 하나이다. 민족다양성을 측정하는 지표 EFI*를 기준으로 볼 때, 미국은 0.49, 영국은 0.32인데 비해 남아공은 0.88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한국은 0.004, 북한 다음으로 가장 동질적인 나라). 실제로 영어, 아프리칸스 포함 공용어만 11개에 달하고, 백인, 흑인 뿐 아니라 여러 스펙트럼의 혼혈인종 (Coloured)들이 섞여 함께 지내고 있다. 민족에 따라 문화와 관습도 천차만별이다.
다양성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대체로 학계에서 받아들여지는 중론은 다양한 구성원들의 이해충돌을 조정해줄 수 있는 공식적/비공식적 제도만 잘 갖춰진다면 다양성의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로 다른 기술, 경험, 능력, 관점이 만나 조화를 이룰 때 조직 혹은 사회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창조적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여러 연구결과들이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나와 피부가, 문화가, 생각이, 삶의 형태가 전혀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들의 생각을 존중, 수용하게 되기까진 꽤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며 살다보면 '한 문제에 한가지 이상의 정답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특히 "단일민족"을 강조하며 누구보다 배타적인 사람들을 키워낸 우리나라에서, 다른 민족, 다른 문화, 다른 언어의 사람들이 가진 장점을 흡수해 우리 것으로 활용해 내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불과 몇개월전 전쟁을 피해 도망 온 난민 몇 명조차도 피부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것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의미의 사회발전은 아직도 요원함을 느낀다. 외국생활 좀 했다는 나도 백인과 유색인종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고 특정 인종/민족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지 못하는 걸 보면 그런 사람들에 대해 크게 할말은 없다.
하지만 도준이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든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다양한 삶의 형태들을 경험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다. 인종이, 피부색이, 부의 수준이, 종교가,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고, 그들이 가진 다양한 배경을 통해 겸손하게 배움을 넓히고 이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해 내는 과정이 우리 도준이한테는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빠가 늦은 나이까지 공부한다고 넉넉하지 않아 물질적으로는 크게 도움이 못 되고 있지만 (뭐 나 하는거 보니 앞으로도 그럴 가망은 없음), 적어도 이렇게 다양한 세계를 경험시켜주는게 우리 아들에게 큰 자산이 되지 않을까,, 하고 고단한 해외 생활에 위로를 찾아본다.
+ 영상을 끝까지 보시면 도준이의 수줍은 미소를 보실 수 있습니다 :)
* Ethnic Fractionalisation Index: 한 나라의 전체 인구에서 두명을 무작위로 뽑았을 때 그 둘의 인종이 다를 확률을 측정하는 지표. 1에 가까울수록 다양. 수치는 Fearon, J.D., 2003. Ethnic and cultural diversity by country. Journal of economic growth, 8(2), pp.195-222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