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은 과연 이기적이고 폭력적인가?
인간은 본래 선한가? 악한가?
참 고전적이고, 답하기 어려운 명제이다.
유명한 철학가,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데이비드 흄이 제창했던 '인간은 원래 악하다'
장자크 루소가 말했던 ' 인간은 본래 선하다'
이 두가지 의견 모두 설득력 있고, 타당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중세 계몽주의와 기독교적 신앙관을 통해서 인간은 원래 악한 것이 보다 일반적인 관점으로 자리잡혀왔다.
그것은 현실 교육관에 그대로 드러난다.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본래 습성을 버리고 문화인, 지성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제한적인 연습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아이들을 한대 모아 연령대로 학습시키고, 노는 것을 제한시키는 것이 기본 교육 방법이 되었다.
선과 악이라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것일까?
선과 악을 구분 짓는 것은 관계에서 비롯된 상황과 맥락이다.
어떤 행위가 발생해야하고, 상황과 맥락 속에서 정도의 척도로 선과 악을 구분해야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라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보응적이고, 호혜적인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최재천 교수는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한다.
이기적인 사람, 이타적인 사람, 호혜적인 사람
예를 들어 내 주변의 사람들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서면 처음 본 사람도 기꺼이 도울 수 있다. 다만, 내 주변인이 대체로 그렇지않다면 그 사람을 돕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 개인의 교육 뿐 아닌, 사회 전반적인 문화와 인류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립의 문제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공감의 깊이가 중요한게 아니라, 공감의 넓이가 중요하다. - 공감의 반경(장대익)"
장대익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립의 대부분은 너무 공감을 잘해서 발생된다고 한다.
특히 한국 사회는 좁은 범위에서 깊게 공감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우리 지역끼리, 우리 동창끼리, 우리 동갑끼리, 같은 종교끼리와 같이 좁은 범위를 깊게 공감하기 때문에 우리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통해 주변인들이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를 질문하기 보다 호혜적인 관계를 생각하며, 나 먼저 선하게 다가가면 우리 모두 선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호혜 : 서로 특별한 혜택을 주고받는 일.
*보응 : 착한 일과 악한 일이 그 원인과 결과에 따라 대갚음을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