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이 알려준 진짜 자유의 의미
휴직이 시작됐다. 9시부터 4시까지,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 찾아온 절대적인 자유 시간. 설렘으로 가슴이 벅찼다. 평일이라 사람도 없는 맛집을 찾아다니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여유를 만끽할 생각에 들떴다. 하루 종일 늦잠을 자고, 미뤄뒀던 강의를 실컷 듣고, 좋아하는 글도 마음껏 써보자 다짐했다. 나는 글을 참 좋아했지.
시간이 많아지자 깨달았다. 지난 세월,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회사가 시키는 대로,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살면서 내가 뭘 하고 싶고, 뭘 먹고 싶고, 뭘 좋아하는지 깊이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다. ‘시간이 없어서’라는 핑계 뒤에 숨겨뒀던 진실은, 사실 나의 의사를 주머니에 넣어둔 지 오래라는 것이었다. 회사에 최적화된 인재가 되어가는 동안,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지고 있었다.
휴직을 하면 그동안 억눌렸던 것들을 '요이땅!' 하고 다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마음속으로 계획했던 것들을 당장 실현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여기저기 요리를 해보고, 이유식을 만들고, 집을 치웠다. 이런 행동들이 의미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어딘가 공허했다. 의미를 찾기 위한 몸부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깨끗한 집, 근사한 요리)은 있었지만, 정작 내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시간이 있으니 매일 글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청소는 끝없이 이어졌고, 정리할 것은 또 나왔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해둬야 할 일들을 구분하고 실천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 이 자유 속에서 나만의 루틴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미뤄뒀던 나의 건강, 부모님의 건강까지 챙겨야 했다. 마치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모든 관계와 책임이 휴직과 함께 재조명됐다. 나는 회사에서 분리되었지만, 부모님의 딸이자 아이의 엄마로서 그동안 등한시했던 역할들을 이 시기에 꼭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나'를 잃어갔다. 24시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9시부터 4시까지의 시간조차 청소, 빨래, 부모님 챙기기 등으로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내 마음속마저 마구잡이로 섞여 있어, ‘요이땅!’ 하고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나는 놀랐다. 아직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과 상황들이 사실은 평온하지 않고 문제투성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급하게 한 달을 보냈다. 마치 인스타그램에 인증이라도 하듯 맛집을 찾아다니고, 미뤄뒀던 약속과 병원 투어를 '도장깨기' 하듯 해냈다. 그렇게 허둥지둥 한 달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휴직의 루틴이 잡히기 시작했다. 휴직은 단순히 쉬는 시간이 아니라, 멈춰 서서 나 자신과 삶을 돌아보는 소중한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