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만나는 나의 이성
기록, 감정과 이성의 경계에서
왜 나는 똑같은 고민을 수십 번 반복하고 있을까? 기록하지 않으니 알 수 없었다. 과거에 무슨 고민을 했는지, 그때의 내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모호해졌다. 그래서 과거의 고민과 미래의 불안이 한데 섞여 지금의 나를 끊임없이 흔들었다. 똑같은 쳇바퀴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나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기록을 시작했다. 매일의 생각, 감정, 고민들을 끄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예상하고 예측했던 현실과 실제는 너무나도 달랐다. 기록을 통해 과거를 되짚어보니, 당시에는 세상의 전부였던 고민들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있었다. 내가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일들의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이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통찰을 주었다. 바로 내가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불안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니 모든 것이 위협적이고, 걱정거리가 되어버렸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모든 것이 흘러갈 것이라고 믿었지만, 현실은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기록을 통해 이성을 만나는 일
그냥 생각으로만 멈춰 있을 때는 감정이 지배했다. 불안, 걱정,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둥둥 떠다니며 이리저리 나를 흔들었다. 하지만 펜을 들고 기록하는 순간, 마법처럼 감정의 소용돌이가 멈추고 이성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막연했던 불안의 실체가 글자로 눈앞에 드러나자, 나는 비로소 그것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
심리학에서 '글쓰기 치료'는 이미 널리 알려진 방법이다.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고 구조화하는 과정을 통해 내면의 혼란을 정리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힘을 기를 수 있게 된다. 내 기록은 나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었다. 감정에 휩쓸리던 막막함에서 벗어나, 논리적으로 내 고민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기록을 통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예측하고 판단하며 살았는지 깨달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이럴 거야', '이 일은 분명 실패할 거야' 같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기록을 통해 알았다. 그 안에는 객관적인 사실보다 나의 주관적인 해석과 불안이 더 크게 담겨 있었다는 것을. '걱정은 실제보다 더 많은 고통을 준다'는 말처럼, 나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상상하며 불필요한 고통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유연한 마음이 주는 자유
이제 나는 예측하고 판단하는 것을 멈추는 연습을 한다. 불안이 몰려올 때마다 기록을 펼치고 과거의 나와 마주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지금의 불안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게 된다. 삶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인정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결정을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이 선택을 하면 어떤 결과가 올까?'를 미리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이 선택이 나에게 어떤 경험을 가져다줄까?'라고 생각한다. 결과보다 과정을, 예측보다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니 삶이 한결 가볍고 풍요로워졌다.
기록은 나에게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되었고, 미래의 불안을 이겨낼 힘을 주었다. 이제 나는 내가 쓴 글을 통해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삶의 불확실성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