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경계선
대한민국은 24시간 밝게 빛난다. 어디 절이라도 찾아 들어갈 필요 없이 고요를 만나려면, 그저 새벽의 시간을 기다리면 된다.
무언가 어긋나고 있다는 불안이 차오를 때, 나는 더 이상 그 감정의 끝을 확인하려 들지 않는다. 밤의 불 꺼진 방에서 스마트폰이라는 또 다른 빛의 통로를 배회할 뿐이다. 고요함 속에서 내가 찾으려 했던 것은 빛이었을까, 아니면 나를 잊게 할 망각이었을까.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내 시간'이라는 강박이 밤을 쉽게 놓아주지 못하게 했다. 무의식적인 커피 한 잔과 의미 없는 화면의 넘김 속에서 나는 줄곧 방황했다. 그것은 휴식이 아니라, 경계 없는 시간 속에 나를 방치하는 일에 가까웠다.
이제 새벽에 일어나 연필을 쥔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밖의 어둠은 오히려 선명해진다. 그제야 의식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와 아이들의 시간 사이에 비로소 선명한 경계선이 그어진다. 경계의 시간이다.
밤이 사념과 무의식의 늪이었다면, 새벽은 오로지 나를 인지하는 시간이다. 이 새벽에 무엇을 해내겠다는 다짐은 하지 않는다. 새벽에 일어나지 못한다고 해서 스스로를 협박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나에게 허락된 이 고요한 틈새를 가만히 응시할 뿐이다.
마흔의 나에게 가장 결핍되었던 것은 성취가 아니라, 나와 타인 사이를 가르는 한 줄기 경계였다. 오늘 새벽, 나는 그 경계 위에 잠시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