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혹시 기억상실인가요?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록'이다.

by ISTJ

나이가 듦을 확연히 느끼는 순간은, 거울 속 주름이 아니라 내가 방금 행한 사소한 행위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다. "시계가 어디 있지?" "핸드폰은?"부터 시작해, 두 아이에게 오늘 아침 뭘 먹였는지도 흐릿해지는 순간, 나는 노화보다 더 깊은 불안에 직면한다.


'나는 도대체 이 시간을 얼마나 엉성하게 살고 있는가?'

아이가 방금 나에게 했던 질문의 요지를 1초 만에 잊어버리는 순간, 나는 깨닫는다. 현재를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파편화된 정보를 쥐려다 보니, 정작 내 삶에 각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멀티태스킹에 늪에 빠져 하나도 집중하지 못한체 시간이 흘러간다. 그리고 기록하지 않은 삶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진다. 이 실존적인 불안이 커질때 나는 항상 시간의 효율화를 생각하며 멀티태스킹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잠시 멈추고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기록이 없으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존적 불안과의 투쟁

과거에는 기록을 소홀히 했다. '나중에 해야지' 하는 게으름 이면에는, 육아의 반복적인 일상이 '기록할 가치가 없다'는 자기 검열이 숨어 있었다. 특별한 성과가 없는 사소한 나날들을 외면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실체는 그 사소함과 일상 속에 있었고, 그것을 기록하지 않을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소외시키는 중이었다. 결국, 기록은 흐릿한 존재로부터 벗어나 나 자신을 또렷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것은 스스로의 존재를 지키려는 처절한 투쟁이다.


뇌를 비우고 '흐름(Flow)'을 채우는 엄마의 기록 3단계

기록을 시작하면서, 단순히 메모 이상의 강력한 변화가 일어났다. 기록은 뇌의 과부하를 해소하는 '외부화된 자기 인식' 도구였다. 나는 불안정했던 기억력 대신, 다음의 ‘삼중 기록 체계’를 구축하며 명료함을 되찾았다.

구글 캘린더: 모든 일정과 할 일 기입 (불안을 즉각적으로 외부화)

다이어리: 그날의 핵심 목표를 손으로 다시 쓰기 (기억의 물리적 강화 및 행동 의지 확인)

일기: 하루를 회고하며 감정과 성찰 기록 (실존의 의미와 감정적 정리)

기록을 통해 머릿속이 비워지자, 나는 비로소 '하나의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 훈련을 할 수 있었다. 모니터 여러 개를 띄워놓는 것을 '생산성'이라 착각했던 과거를 반성했다. 이제는 하나의 일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절대 다른 창을 켜지 않는다'는 철칙을 세웠고, 그 결과 시간의 파편들은 몰입(Flow)의 경험으로 되돌아왔다.


기록은 '소비자'를 넘어 '생산자'로 태어나는 가장 쉬운 길

온전한 자유는 타인의 시선을 좇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준으로 중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즉 '자율성'에 있음을 기록을 통해 깨달았다.

따라서 나는 소비하는 자가 아닌 생산하는 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생산의 가장 쉽고 강력한 길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기록이다. 이것은 외부의 인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실존을 증명하고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행위다. 누가 읽든 읽지 않든 상관없다. 이 기록은 나의 주체적인 존재 증명이다.


벌써 10월, 1년이 또 허망하게 흘러갔다고 절망할 필요가 없다. 다음 해 10월, 내가 또다시 "어떻게 1년이 지나갔지?"라고 자문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제는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기꺼이 나의 기록을 펼쳐볼 것이다.

기록 속에는 흐릿했던 과거가 아니라, 나의 의지로 채워 넣은 '밀도 높은 시간'들이 명료하게 나를 반기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 기록을 통해 나는 마침내, 아이들에게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하는 엄마'를 선물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이 혼란스러운 육아휴직 기간에 성취한, 가장 위대한 '나를 잃지 않는 방법'이자 삶의 최고의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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