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뜨내기인생 스토리
관우와 송죽이 모(母)가 같이 살을 맞대고 산 지가 서너 해가 지나갔다. 호적(戶籍)은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분명치가 않다. 혼인관계로 신고했는지 그냥 그렇게 사는지 알 길이 없다. 처음 들어올 때 세 살이었던 송죽이가 국민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어 간다고 했다. 관우는 송죽이에게 한 번도 다소롭게 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관우가 가끔 그 애가 누구의 피붙이인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송죽이 모(母)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관우가 바라던 자식은 들어서지 않았고 해는 미끄러지듯이 흘러갔다. 관우는 예나 다름없이 말수가 적었다. 하지만 몸뚱이를 가만히 두지 못했다. 그는 부지레하게 세월 보내는 것이 식미(食味)에 맞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농번기에는 이 집 저 집 불려 다니며 논밭일 해주느라 하루도 쉬지 않았다. 초저녁부터 관우의 코 고는 소리가 개울가 맹꽁이 소리같이 요란하게 흘러 나왔다. 송죽이 모(母)는 밤새 뒤척였다.
해가 떨어지면 시골 마을은 정말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먼 동네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날씨가 흐린 날이면 읍내로 들어오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온다. 시골 사람들은 그 기적소리에 맞춰 일을 마무리하고 저녁 밥을 짓곤 했다. 아침에는 읍내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기차소리에 맞춰 시간을 대중했고 지각이라도 할 것 같으면 신작로로 가지 않고 논밭을 가로질러가곤 했다.
날이 갈수록 관우와 송죽이 모(母)가 다투는 소리가 담을 넘어갈 때가 잦았다. 물 길러 나온 우물가에는 동네 아낙네들이 수군거리 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모두가 아는 좁은 동네 사람들이라 서로가 얼굴 붉힐 일은 하지 않고 살았다. 어른들은 언짢은 일이 있어도 목소리가 담을 넘지 못하게 권속들을 단속 하였다. 송죽이 모(母)가 동네에 들어온 이후에 한동안 동네 관심사 되었다. 지붕 이는 날 있었던 관우가 뱀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는 꼬리가 길었다.
그때는 동네 안팎의 소식이나 소문은 주로 마을 우물터나 개울가 빨래터가 진원지였다. 남자들은 입이 무거웠고 남 이야기를 할 겨를 이 없었다. 자식 많이 낳아 먹여 살리기가 힘에 부쳤다. 딸린 권속이 예닐곱 명은 보통
이었다. 농사일하기도 바빴고 가을걷이가 끝나도 뭔가 해야 했다. 가마니를 짜고 세끼 줄을 꼬아 읍내 갖다 팔았다. 가장 많이 내다 파는 것이 땔감이었다. 돈을 만질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게 그들의 삶이었다. 관우도 그랬다.
관우의 심사는 자주 흔들렸다. 정처(定處)도, 근본도 없는 떠돌이 삶을 살다가 송죽이 모 (母)를 만나 뜨내기 신세를 면했으니 부운 (浮雲) 같다는 마음은 들어갔다. 사람의 심사가 끓는 팥죽 같다고 했든가? 말을 타면 종 부리고 싶다고 관우는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자식에 대한 욕망이 감춰지지 않았다. 너무 늦기 전에 송죽이 모(母)에게 자신의 피붙이를 갖고 싶다는 말을 누누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