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 <6>

어느 뜨내기인생 스토리

by Morpheus

관우도 그랬지만 송죽이 모(母)도 그녀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근본(根本)을 중시하는 시골의 정서에 맞지 않게 그녀의 과거의 삶은 묻혀 있었다. 관우는 그 동네 말씨는 아니었으나 타도(他道) 사람은 분명 아니었다. 관우가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일성 그렇지요'란 말은 동네에서도 쓰였다. 뜨내기 관우의 근본은 엄니가 만들어 준 것이었다. 우리 집에 자주 들락거렸고 그래서 받아준 것이 뿌리가 되었다.


송죽이 모(母)의 말투는 어느 지역인지 분명치 않았다. 누구는 서울말을 쓴다고 하기도 하고, 충청도 말씨라고 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이곳저곳 많이 떠돌아 다녔다고 했다. 웬만하지 않으면 좀처럼 속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동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송죽이 모(母)에게는 그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괜스레 아낙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다. 엄니에게는 마음을 열어두고 있었는데 그건 엄니가 관우를 받아주고 또 둘을 맺어준 고마움과 의지(依支)의 증표(證標)였으리라.


그곳 삶이 그랬다. 크게 기뻐할 일도 없었고, 특별히 나쁜 일이나 괴이한 일이 일어나지 않고 지나가는 삶이었다. 오래 살아온 늙은이들은 담 넘어 들리는 곡(哭) 소리 따라 펄럭이는 만장(輓章)들을 앞세운 울긋불긋한 상여를 타고 떠나갔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대문에 둘러쳐진 금기(禁忌) 줄로 동네에 출산을 알렸다. 아들을 낳으면 금기줄에는 빨간 고추 두서너 개와 숯이 끼어있었고, 딸은 솔잎을 끼었는데 왜 솔잎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금기줄은 왼쪽으로 꼬았는데 그 이유도 알지 못했다. 그냥 '부정 탄다'라고 했다.


송죽이가 이듬해 국민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 아이가 사라져 버렸다. 송죽이 모(母)가 일 나갈 때면 데리고 다니곤 했는데 학교 갈 나이가 되어가니 집에서 혼자 지낼 때가 많았다. 그날은 송죽이 모(母)가 일나 갔다 해질 무렵에 돌아와 보니 송죽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미처럼 마을에서 외톨이라 찾아가 볼 이웃도 없었다. 조용하던 송죽이 모(母)가 방방 뛰었다. 뒷마당을 몇 바퀴 돌다가 혹시나 하고 우물 안도 내려다보고 뒷간에도 찾아보고 해도 송죽이는 없었다.


이 일을 어쩌나! 그 야무진 송죽이 모(母)는 이제 훌쩍거리며 옆집을 기웃거리다가 동네 안골로 들어가 헤맨다. 가끔 가보았던 당수나무 숲에도 가보고 개울가에 나가봐도 가뭇없다. 땅거미가 내려 날이 어둑어둑 해지니 송죽이 모(母)는 실성(失性)한 사람같이 머리가 흐트러지고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돌아왔다. 방에 들어가 '송죽아 송죽아' 하며 통곡을 한다. 찾을 길이 없으니 대책이 없다. 막막한 일이었다.


그 동네가 그랬다. 마주 보고 있는 서산밑 으로 읍내로 나가는 신작로(新作路)가 나있다. 차들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그 길에는 우마차(牛馬車)가 주로 다니고 등하교 때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어쩌다 한 번씩 택시가 동네 어귀까지 들어오곤 했다. 읍내로 나가는 또 다른 길은 동네 어귀를 따라 흐르는 개울가 샛길이 있었다. 여름철 비가 많이 오면 개울가 길은 없어졌다 다시 생기곤 했다. 길가에 과수원이 개울변에 있었는데 탱자나무 울타리가 튼튼하여 사람은 물론 큰 물도 스미지 못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샛길을 따라 송죽이의 그림자가 모래 위의 물새 발자국처럼 찍혀있었다..

작가의 이전글가을의 상념(想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