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뜨내기인생 스토리
당시는 그랬다. 해산(解産)하고 얼추 이래가 지나면 산모들은 털고 일어나 일을 했다. 특히 시골은 농번기에 해산하게 되면 이래도 길었다. 아이를 낳는 일이 그리 특별하지도 않게 생각했다. 여섯일곱은 낳았으니 말이다. 미영이는 느긋하게 누워있지를 못했다. 식당일이 바쁘리라 생각되어 마음이 켕겨 누워있는 게 편치 못했다. 송죽이를 둘러업고 식당일을 도왔다. 식당 주인은 손사래를 치며 찬바람 쐬지 마라 찬 음식 먹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다. 미영이는 어미 없이 자란 터라 그 잔소리가 고맙고 따뜻했다.
아무리 식당 주인이 챙겨준다고는 해도 미영이의 마음 한 구석은 퀭하게 비어있었다. 어미 없이 자란 미영이 아비 얼굴조차 보지 못한 송죽이를 업고 있다는 현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송죽이를 낳은 후에 면회를 갔다. 이름을 송죽이라고 했다. 기태는 송죽이에 대해 묻지 않았다. 앞으로 면회를 오지 말란다. 차가움도 싫음도 아니었다. 데면데면한 표정으로 거리를 만들려는 기태의 마음이 읽혔다. 어릴 때부터 원생으로 지내면서 서로의 내면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일까 미영이는 기태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이 느꼈다.
또다시 상실한다는 공허함이 밀려와 미영이의 마음은 허전함으로 가득했다. 기태의 시선이 먼 곳에 있었고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미영이가 기태의 시선을 따라가기에는 기태와의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고 기태의 침묵의 벽이 무겁고 단단했다. 이유를 물을 수없었기에 대답도 없었다. 돌아서는 기태의 등뒤가 낯설었고 공허했다. 기태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렇게 기태가 미영이 곁을 떠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미영이는 헤어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고아원을 나와 헤어졌다 다시 만났 고, 같이 살면서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고 그랬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 기태가 미영 이한테 찾아오지 말라고 한다. 기태의 아이까지 낳았는데 그는 멀어져 가고 있었다. 기태도 자기가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까? 정말 나를 영영 떠나려고 하는 것일까? 미영이의 관지놀이가 아파왔다.
미영이는 감옥이란 곳을 생각했다. 무섭거나 먼 곳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익숙하지는 않더라도 언젠가 살아냈던 기억이 있는 곳이라고. 생경(生更)스런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훑고 지나갔다. 울타리나 벽으로 둘러싸인 곳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분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아원에 살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었다. 이곳은 다른 곳이라고. 보이지 않는 벽과 울타리로 둘러싸인 곳이라고. 그래서 바깥세상과 어울리지 못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