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 <14>

어느 뜨내기인생 스토리

by Morpheus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보냈던 어두운 그림자가 미영이를 따라다녔다. 사람들이 미영이와 거리를 두는 게 아니라 미영이 자신이 스스로 웅크려 사람들과의 거리를 늘리고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하나라도 무너지면 미영이는 흔들리며 공허하게 만들었다. 기태로부터 거부를 당하고 미영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루 하루를 식당에 나가 일하고 먹고 자고 하는 일 외에는 없었다. 그런 틈에도 송죽이는 자라고 있었다. 어느새 삼 년이 흘러갔으나 변한 것은 없었다. 송죽이가 재롱을 피웠으나 미영이는 덤덤했다. 오가는 사람들과 함께 숨 쉬고 살아도 미영이의 세상은 항상 벽 속에 갇혀있었다. 미영이는 그 벽을 넘고 싶었다.


어느 날 식당 주인이 미영이에게 긴히 얘기할 게 있다고 했다. 지금 식당을 접고 경주읍내 시장터에 먼 친척이 하고 있는 국밥집을 인수한다고 같이 가겠냐고 했다. 어차피 가서 새사람 쓰는 것보다 송죽이 모(母)가 같이 가면 좋지 않겠나 했다. 기태와 갈라선 처지를 식당 주인은 알고 있었기에 하는 소리였다. 이곳을 떠난다는 것은 미영이에게 여러 갈래의 의미들이 따랐다. 오래된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만 기태란 존재가 기억의 벽을 넘는데 가로 놓여 있었다. 자고 나면 생각이 바뀌었지만 미영이의 가슴속에 여기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자라고 있었다.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 지난 삶 속에 남아있는 찌꺼기 같은 회한들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기태와의 문제는 기태가 만든 문제다. 그와의 기억이 따라다녀도 어쩌랴. 매듭지어지지 않은 기억들은 그때 가서 또 맞주치자. 그래야 이 벽을 넘어 새로운 일상을 만날 수 있지 않겠나? 미영이는 스스로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식당 주인에게 같이 가겠다고 했다. 결심을 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식당 주인이 인수한 곳은 시장통 안에 있었다. 사흘마다 장이 서는데 사람들로 북적였고 장이 서지 않는 날에도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읍내 밖에서 온갖 물건들을 내다 팔았다. 시장 뒤편에 우시장(牛市場)이 있어 소울음소리도 들려왔고 쿰쿰한 냄새가 바람 따라 밀려왔다. 시장 바닥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영이가 국밥집에서 하는 일은 대전 변두리 식당에서 하던 일이나 같았다. 사람들이 투박하고 사투리 소리가 높았다.


식당은 빠르게 안정되어 갔다. 어물전이나 푸줏간이 옆에 있었고 채소는 아무 곳에서나 살 수 있어 재료 걱정이 없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거칠게 들렸으나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한번 찾아왔던 손님들은 대개 단골이 되었다. 손님들이 송죽이 모(母)가 다부지게 일하는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가끔씩 농을 걸기도 했다. 그녀는 야무지게 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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