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 <16>

어느 뜨내기인생 스토리

by Morpheus

볼 수 있는 사실적 감각을 밀어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픔을 동반하고 있음을 관우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금 송죽이 모녀와 기태가 한 공간 에서 같이 있을 것이란 상상이 마음속에서 구체화되고 그가 믿고 있다는 사실이 관우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의 원래의 가족 단위가 아니었던가? 관우 자신 이 그 단위에 끼지 못하고 바깥 지경(地境)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음이 아팠다.

어둠이 깔린 샛길 옆 탱자나무 울타리 안 과수원에서 새큼한 사과 냄새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오면서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이 육신의 허기(虛氣)인지 상실에서 오는 허전함인지 는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둠이 깔린 관목 사이에서 귀소(歸巢)하는 들새들의 울음 소리가 조잘조잘 들려왔다. 스산한 밤공기가 식당 주인이 따라준 술기운을 몰아내고 있었다. 귀가하여도 어두운 정적(靜寂)만이 기다릴 공간이 싫어졌다.

이른 아침에 깨어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제 귀갓길에 마을 어귀에 있는 점방(店房) 에서 막소주를 꽤나 마셨던 기억이 났다. 일하면서 새참으로 농주를 한두 잔은 마시 지만 취하도록 혼자 마신 술은 처음이었다. 관우는 어제 읍내 국밥집주인과 나눈 얘기 들이 다시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때늦게 기태가 나타나 송죽이를 몰래 데리고 간 사건보다 송죽이 모(母)와 송죽이 그리고 자신이 처한 이 현실적 구조가 싫었다. 무 자르듯 풀어질 문제가 아님이 머리를 지끈 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관우 자신이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송죽이 모(母)가 딸을 찾아 떠난 후 동네에서 는 온갖 소문들이 흉흉하게 떠돌았다. 근본 없이 이 남자 저 남자들 따라다닌다, 술집 여자였다는 등 소문들은 으레 그렇듯이 사실과 달랐다. 이런 소문들을 못 들을 관우 가 아니었다. 관우는 몹시 속이 상했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으나 속이 편치 않음을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가 빨리 돌아와 주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송죽이 모녀가 돌아와 준다 면 예전과 다르게 살아보겠노라는 마음도 들었다.

관우는 예전과는 달라졌다. 혼자 떠돌아다닐 때는 그냥 하루하루를 살았다. 마음속에 의욕 도 욕심도 없이 그냥 살아갔다. 하루살이처럼 하루를 살고 또 다음 날을 살았다. 관우 자신 이 살고 있는 건지 그냥 날짜에 실려 살아가 는지 어느 날이든 미련이 없었다. 미련이 없으니 욕망도 없고 계획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하루의 삶이 족하지 않았다. 난생처음 소망이 생겼음을 알았다. 송죽이 모녀가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뭔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관우의 육신을 움직였다. 낮에는 동네를 다니면서 이거저것 도와주고 밤엔 새끼를 꼬아 가마니 를 짜고 짚신도 만들었다. 며칠씩 모아서 읍내에 내다 팔았다. 핑개삼아 국밥집에 들러 송죽이 모녀의 소식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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