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잡이 "모이의 유혹
가을이 오는듯했다. 티 없이 높고 푸른 하늘은 공활(空豁)하다. 이 보다 더 좋은 옥빛 하늘은 세상에 없을 테지.
좋은 것은 귀하고 단명(短命)하다 했던가?
붉게 타들어가던 단풍은 벌써 낙엽이 되어 이리저리 뒹군다.
느닷없이 삭풍(朔風)이 문풍지를 울리며 겨울이 시작되었다. 시골의 겨울밤은 겨울보다 길었다.
밤새 불던 바람은 피곤에 쩐 눈꺼풀이 감기면서 잠잠해진다. 바람이 그친 건지 듣지 못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참새들 재잘거리는 소리에 동창(東窓)이 밝았다. 문을 열어 재치면,
"와, 눈이 왔네!"
밤새 소리도 없이 흰 눈이 온 천지를 하얗게 덮고 있다. 장독 위에도 감나무 가지 위에도 소복이 눈이 쌓였다.
앞마당 살구나무 아래에는 참새들이 재잘거리며 쌓인 눈을 헤집고 모이를 찾는다. 인기척만 나면 참새떼는 호로로 날아 살구나무 위로 도망갔다 다시 내려오곤 한다.
겨울 참새는 포동포동 살이 쪄있다.
장독에 쌓인 눈 위에 참새들의 발자국이 앙증스럽다.
아버지가 슬그머니 움직이신다. 살구나무 아래 눈을 조금 쓸어내고 널따란 소쿠리를 앞으로 숙여 검은 노끈이 묶인 빨래 방망이로 소쿠리를 괴신다. 소쿠리 위에 맷돌 한 짝을 비스듬히 누인다.
소쿠리 아래에 좁쌀과 수수를 한 움큼 뿌려놓으신다. 그리고는 노끈 끝을 쥐고 방으로 들어와 문틈 사이로 참새떼를 정탐하신다.
나뭇가지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
(一擧手一投足)을 지켜보던 참새떼가 주위가 고요해지면 호르르 내려온다. 주뼛주뼛 의심의 여지가 많다.
고참 리더 참새가 소쿠리 밑으로 종종걸음을 감행(敢行)한다. "모이의 유혹"을 참지 못한 무리들이 쪼르르 따라 들어온다.
참새들이 정신없이 모이를 쪼는 소쿠리 밑의 방망이 끈을 아버지가 잡아챈다.
참새들은 소쿠리 안에 갇힌다. 맷돌에 눌린 참새들이 잠깐 퍼덕이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소쿠리 밑에서 팔닥거리며 죽어가는 참새를 보며 애처로웠다. 학창 시절 유행처럼 번졌던 겨울밤 포장마차에서 참새구이 안주와 소주 한 잔의 유혹에 나는 동참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