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따라.. <4>

VICTORIA 만(灣)의 물빛

by Morpheus

오늘날 홍콩의 스카이라인을 본 사람들은 1970년 초중반의 까오롱(九龍)의 침사추이 지역이나 홍콩섬의 풍경을 상상해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도시의 외형뿐만 아니라 홍콩사람들의 생활상을 어림할 수가 없다. 변화가 아니라 전혀 다른 도시로 바뀌었다.


1977년 9월 빅토리아만(灣)의 물빛은 탁했고 거칠었다. 스타페리 부두에는 비릿한 바람이 불어오곤 했다. 부둣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체를 인양하는 것을 보았다고 현지 직원들이 두런거렸다.


밤 열 시 이후에는 밖에 나가지 말라고도 했다. 밤길은 으스스했고 뒷골목에서 "Help, Help"라고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유명 여배우의 납치사건도 그즈음이었다.




12월까지 현업적용을 끝내야 하는 장기 출장이었다. 해외로 출장 가는 선배들이 그렇게 부러웠는데 香港도 바레인과 같이 얼마 지나지 않아 힘든 출장임을 직감했다.


크리스마스는 서울에서 보내는 일정이었다. 전체 소요 일자를 계산하여 일정과 출장비를 지원받아 왔지만 일정 단축을 위해 머리를 굴렸다. 무리하게 단축하다가는 정해진 날짜를 맞추지 못하고 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한 가지 큰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홍콩에 나가면 꼭 카메라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결행하기로 했다. 외국에 나왔다는 실증(實證)은 사진뿐이었으니 말이다.


호텔을 마룻바닥의 판자가 삐걱거리는 YMCA로 옮기고 아침은 거르고 점심 저녁은 침사추이 골목의 STREET FOOD로 때우기로 했다. 여비(旅費)의 반을 떼어 일제(日製) Y사 카메라를 덜컥 샀다. 가슴이 뛰었다. 빠듯한 여비에 대한 불안, 그리고 처음 가져보는 설레임! 코닥 필름값도 만만찮았다.



처음 한 달은 순조로웠다. 현지인들의 학습과 적응이 예상외로 빨랐다. 기본적으로 언어 장애가 없었다.


일과가 끝나면 현지인들이 돌아가면서 저녁을 초대해 주는 여유도 있었다. 홍콩의 현지인들은 순하고 착했다. 강행군에도 잘 따라주었다.

주말에는 현지인들과 란타우섬으로 피크닉을 갔다. 해변은 때 묻지 않은 시골의 모래밭이었다. 물속이 유리알처럼 맑았다.


그로부터 21년 후 바로 옆 챜렙콕 섬에 SOTA* 국제공항이 열릴 것을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4년 후에는 한국의 영종도에도 세계적 국제공항이 세상에 나왔다. 두 공항이 너무도 닮았다.




그 당시 현지인들의 급여는 낮았고 삶은 고단해 보였다.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1997년 6월의 마지막 날이 도래(到來)하고 있음을 예비하고 있었을까? 현지인 몇몇이 교육 중에 이민을 떠난다고 나가 버렸다. 영국 사람들은 반환(返還)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회귀(回歸)라고 했다.

20년 후 1997년 6월 마지막 날, 그날에 그 현장에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 HONGKONG SAR*란 명칭은 익숙하지 못했다.




*SOTA: State Of The Art
*SAR: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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