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Allée Buffon Apartment
1980년대 초 파리의 한국 교민사회는 그리 크지않았다. 대사관과 은행 그리고 언론사 한 두어 곳이 있었고 대기업 본부가 몇 군데 나와있었다.
한국식당이 두 세 곳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주재원들이 부임하여 적응하기 힘든 곳 중에 하나가 파리였다. 주택부터 은행계좌 개설등 행정처리가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언어 소통의 어려움도 그 이유 중에 하나 였다. 프랑스인들의 자국어에 대한 자존심은 난공불락의 시대였다.
파리로 출발하기 전 달달 외웠던 "Est-ce que vous parlez anglais?"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영어 하십니까?"라고 하면 프랑스어를 그렇게 잘하는데 왜 영어가 필요하냐고 되물었다 남 속도 모르고..
한편 파리 생활이 적응되면 임기 끝나고 가장 떠나고 싶지 않은 나라가 프랑스라고 했다. 프랑스 주재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다른 나라 주재원들과의 형평성도 있으니 어쩔 수없었다. 대신 주재 경력자들을 재발령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좁은 호텔 생활의 불편함이 극에 달했을때 아파트를 계약할 수 있었다. 파리 도착 후 한 달이 지날 즈음이었다. 파리 남동쪽 센강 외곽지역으로 한창 주택을 개발하던 Masion Alfort 지역이었다.
Masion Alfort는 지금의 파리 METRO 8번 노선상에 있었다. 지상에는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스물서너 개 역을 땅밑으로 오갔다.
파리의 지하철은 세계 최고라고 평가되었다. 부산의 지하철 공사에서 파리 METRO를 BENCHMARKING 하러 방문했는데 안내를 맡은 적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무임승차가 많아서 발각 시 30배 벌금이 추징되었다. 티켓 투입구 아래에 "밑으로 들어가면 개, 위로 뛰어넘어 가면 까마귀"라는 경고문이 조그맣게 붙어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문화강국다워 보였다.
Masion Alfort는 당시 서울의 목동단지의 개발 시점과 지역이 많이 닮았다.
계약한 아파트는 높고 큰 동(棟)들 사이에 난 산책로 옆 13 Allée Buffon의 7층 작은 아파트 였다. 뷰퐁 오솔길 13번지...
왼쪽에는 어린 아들이 있는 프랑스인 부부가 살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이탈리아인 남자가 혼자 살았다. 프랑스인 부부는 동양인을 몹시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어린 아들을 혼자 두고 부부는 외출했고 아이는 밤새 울었다.
부임한 첫 해 시월에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출산을 담당했던 산부인과 의사를 집으로 초대했다. 고맙기도 하고 앞으로 아이를 담당하기에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
Docteur Constant은 영어를 잘했다.
메인 메뉴는 한국의 토종음식 된장찌개였다.
Gourmet인 닥터 꽁스땅의 된장찌개에 대한 절찬으로 접대는 성공적이었다.
그가 돌아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Masion Alfort 아파트 관리소장과 공구박스를 든 직원이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