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llocation Familiale
닥터 꽁스땅이 떠난 후 방문한 아파트 관리소장은 출입문에 고무패드로 SEALING 하겠다고 한다. 옆집에서 냄새로 민원을 제기했단다.
거부할 수 없었다. 언젠가 된장찌개의 진면목을 보여줘야겠다고 작심했다.
닥터 꽁스땅은 가끔 예고 없이 찾아와 된장찌개를 달라고 했다. 된장도 갖고 갔다. 된장 마니아가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본질은 대개 비슷하다고 본다. 구현하는 소재(素材)나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것을 문화라고 하기도 하고 관습이나 전통이라고도 한다.
된장냄새나 치즈냄새는 같은 원리에서 발생하지 않는가? 호불호(好不好)가 이해의 깊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불편했다.
둘째 아이의 출산을 앞둔 시점에서 가족복지 공단인 CAF (Caisse d'Allocation Familiales)에서 한 통의 우편이 날아왔다. 꽤 큰 금액의 수표도 동봉했다.
프랑스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두 자녀 이상의 가족을 지원하는 수당이라 했다. 국적불문이라고 했다. 출산 이후에도 분기마다 일 년여 동안 수표가 날아온 것으로 기억된다.
프랑스는 그 당시 이미 자녀에 대한 가족수당 (Allocations Familiales)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아내가 출산하고 산후조리로 곤욕을 치렀다. 프랑스 현지인들은 출산 후 샤워를 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산후 식단도 평상시와 다른 게 없었다. 바게트와 베이컨 소시지 치즈 커피 등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보다 못해 밥과 미역국을 끓여서 갖고 갔다. 의사들이 시식(試食)도 하고 검사를 하더니 좋다고 했다. 현지인들의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었다. 미역국 맛을 보자고 야단을 쳤다.
그때 태어난 둘째 딸아이가 낳은 아이가 벌써 Late Teens가 되었으니 연어의 회귀(回歸) 처럼 어미가 태어난 곳으로 찾아가려나?
그때 그 병원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세월은 잡힐 듯이 가까이 머물고 있군..
Hopital Intercommunal Creteil,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