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vie à Paris, puis le départ<a>.
Paris, 프랑스 도시는 고요했다. 사람들의 오고 가는 발걸음도 요란치 않았다. 그들의 삶은 잔잔했고 그 잔잔함 속에서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었다.
그들의 삶은 넉넉하기에 평온했다. 우리의 삶의 형태와 서사(敍事)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1980년대 초에 그들은 이미 근로시간이 주 40시간 이하로 떨어졌다. 2004년에 우리는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되었다.
현지 직원들은 여름 바캉스를 위해서 한 해를 일한다고 낭랑(朗朗)하게 말했다.
앞서가는 풍족하고 화려한 나라에 나가산 다는 것이 마냥 즐거운 일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현지인들을 먼저 집에 보내고 밤늦은 시간에도 일하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물론 그들에게도 어두운 면은 있었다.
1981년 5월에 미테랑(Mitterrand)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복지증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봇물 터지듯 했다.
국가기관이 많이 들어선 앙발리드(Les Invalides) 거리는 물론 샹젤리제와 바스티유 광장 등지에는 흰옷 입은 의사들의 침묵의 시위가 자주 있었고 연금개혁이나 노동개혁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화염병이나 쇠막대기 대신 플래카드나 마스크로 침묵을 선택했다. 우리는 자유가, 그들은 삶이 주제였다. 그들은 질(質)을, 우리는 양(量)을 요구했다.
부러웠다. 그들이 부러웠고 그들의 나라가 부러웠다. 유럽의 중간 토막 프랑스의 넓고 비옥한 땅덩어리는 윤작(輪作)을 하지 않으면 농산물이 넘쳐나는 나라였다.
파리 남쪽 분지에 끝없이 펼쳐진 오를레앙숲 (Forêt d'Orléans)도 부러웠다.
좁고 거친 산비탈에서 어린 삶을 살아냈던 산촌 출신을 더욱 부럽게 한 것은 그들의 넓고 푸른 지평선이 보이는 땅 그리고 넉넉하게 자리 잡은 그림같이 가꿔진 농촌의 모습..
노르망디(Normandy) 해안선을 따라 영화의 세트장처럼 꾸며진 몽상(夢想)의 도빌(Deauville)과 트루빌(Trouville)의 앙증스러운 도시들..
전국에 깔려있는 수천 개의 고풍스러운 샤또(Château)들..
농촌이나 어촌이나 도시들이 모두 풍요롭게 다가왔다.
진정 부러운 것은 그 땅의 사람들이었다. 그 넉넉한 대지에서 모자람 없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모래바람 속으로 떠나지 않아도 되는, 캄캄한 굉도(宏道)를 따라 깊은 땅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그 땅의 사람들이 부러웠다.
알렐산드르 다리( Pont Alexandre III) 위를 걷는 파리의 연인들, 길거리의 테라스 카페(Terrasse Café)의 풍경들..
파리의 레스또랑에서 긴장하지 않고 메뉴를 주문할 수 있는 그들, 된장 냄새가 난다고 현관문을 빠킹 당하지 않아도 되는 그들이 부러웠다. 프랑스어를 말하는 프랑스 사람들이 정말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