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따라.. <13>

Victoria 만(灣)의 불빛

by Morpheus

HONG KONG AGAIN!


한국의 근대사에서 80년대만큼 요동쳤던 때가 있었던가?


6~70년대를 빈곤 탈출이라는 역사적 대전진의 시대였다면 80년대는 산업화의 자신감으로 탈냉전의 조류에 편승(便乘) 하여 국제사회에 국호(國號)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 정치의 혼란했던 소용돌이를 해외에서 지켜보며 국제적 기류를 읽을 수 있었다.


사할린의 민항기 격추는 인간존엄을 경시한 소비에트 연방을 향한 강한 분노와 비난이 파리의 거리에도 목도하게 되었다.




86 서울아시안게임은 산업화로 얻은 자신감을 88 서울올림픽에 선보일 전초적 (前哨的) EVENT였다.


80 모스크바와 84 로스엔젤리스 올림픽이 서방과 동구권의 불참으로 반쪽이 된 올림픽을 88 서울올림픽이 통합하는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90년 러시아(구소련), 92년 중국과 수교하는 외교적 수순(手順)으로 귀결 (歸結)되었다.




환태평양(環太平洋) 연안의 조류(潮流)는 천천히 동북아 연안의 물결과 마주하며 실용적 정경(政經) 변화를 태동(胎動)하고 있었다.


1989년의 천안문 사태는 인권에 대한 또 하나의 분출이었다. 중국의 꿈틀거림은 거대했고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는 90년대의 초반으로 이어졌다.




등샤오핑(鄧小平)은 광둥성(廣東省)의 주강삼각주(珠江三角洲)를 주시했다.


실질적으로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지휘한 이 작은 거인(巨人)은 광둥성 내륙에서 발원 (發源)하여 션쪈(深圳)과 주하이 (珠海)를 거쳐 홍콩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투영되는 Victoria 만(灣)으로 흘러가는 바다물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이 작은 거인(巨人)의 마음속에는 소강사회(小康社會)로 가는 길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인민이 배부르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동경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지론은 a 검은 고양이 고양이 상관없이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 다"라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펼쳤던 것이다.


등샤오핑(鄧小平)은 주강(珠江)의 불빛을 바라보며 대륙의 개혁(改革)과 개방(開放) 은 역류(逆流)할 수 없는 조류(潮流) 임을 온몸으로 받았으리라.


1992년 초 등샤오핑(鄧小平) b남순강화 (南巡 講話)는 개혁과 개방의 지침서가 되었다. c발전시경도리(發展是硬道理)'로 집약(集約)되는 이 한마디는 단단하고 돌아설 수 없는 그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한편 유럽의 동쪽에 드리워진 철(鐵)의 장막(張幕) 속에 은둔하고 있던 소비에트 연방(蘇聯)에도 고르바쵸프(1985~1991) 라는 지도자가 출현했다.


그는 서방(西邦)과 냉전의 장막을 걷어내고 소련을 개혁(改革:페레스트로이카)과 개방 (開放: 글라스노스트)의 길로 나서게 했다.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그 잘 생긴 이마에 한반도 지도를 닮은 붉은 반점은 한. 러의 관계를 예시하고 있었던가?


그는 멋진 미국 파트너 레이건과 차분하게 마주 앉아 냉전 후의 세계를 구상했다. 그리고.. 그는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앞에 실각(失脚)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냉전종식과 군축. 동서독 통일에 대한 기여 등으로 1990 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되었다.




1977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떠났던 빅토리아 灣 (Victoria Bay)를 1994년 가을에 다시 찾아왔다. 출장이 아닌 지역의 책임자로..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앞으로 3~4년 후에 휘몰아칠 태풍의 기상도(氣像圖)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a不管黑猫白猫, 捉到老鼠就是好猫

b남순강화(南巡講話): 등샤오핑이 92년 초 중국 남부의 주강삼각주를 순시(巡視)하고 담화형식으로 내놓은 정치적 지침서

c"發展是硬道理" : 발전은 어떤 논리보다 굳다, 즉 발전은 이미 불가역적 (不可逆的) 이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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