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따라.. <14 >

Mid-Levels에 부는 바람(a)

by Morpheus


1977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장기출장을 마무리하고 귀국한 이후, 몇 차례 급한 업무출장으로 다녀오긴 했으나 홍콩의 변화를 찬찬히 주시하지 못했다.


60년대 후반 경제개발의 시동(始動)을 걸었던 아시아의 네 마리의 용(*四小龍: Four Asian Tigers)들의 움직임은 활발 했고 단단한 전진을 이어갔다.




70년대 후반까지도 주당 서너 편에 불과하던 국적 항공편이 94년 부임 초기에는 하루에도 서너 편이 운항했다.


Anchorage를 경유해서 16시간여 소요하던 파리노선에 비해서 세 시간 반이 소요하는 홍콩노선은 가장 좋아하는 업무 비행노선이 되었다.

아침에 탑승해서 브런치를 제공받고 책 몇 페이지와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진 후 사무실 출근이 가능했으니 버릴 시간이 전혀 없었다.


챜랩콕 공항 개항 전에 카이탁(啟德) 공항 시절의 얘기다. 까오룽의 건물 숲을 헤치고 착륙하는 항공기의 모습은 홍콩의 또 다른 이미지에 담겨있다.





70년대에 까오룽 침사초이(九龍尖沙咀)가 중심이었는데 90년대에 홍콩섬이 도시의 중심이 되어있었다.


Quarry Bay의 주거지역에서 Causeway Bay(銅鑼湾), Wan Chai(灣仔), Central (中環), Admiralty(金鐘) 등 홍콩섬의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이어지는 스카이라인 은 빅토리아 만(灣)의 물결 위에서 출렁였다.


해가 지면 휘황찬란한 불빛이 도시의 어둠을 삼키고 몽환(夢幻)의 야경을 자아냈다.

동구주랑(東區走廊 (Island Eastern Corridor) 고속도로가 해안을 연결하면서 홍콩섬을 완벽한 주거, 상업, 생활, 금융, 행정 기능의 도시로 만들어 놓았다.


Central 지역은 모든 건물이 연결 통로를 갖추고 있었고, Central의 현대식 쇼윈도에서 파리의 향수 내음과 샹들리에의 불빛 속에 유럽의 고급 패션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바로 그곳에 아시아 속의 유럽이 자리 잡고 있었고 영어는 일상의 언어였다.




70년대의 홍콩 현지인들은 재정적으로 한국보다 풍족치 못했으나 모두가 성실했다. 94년 그들의 삶의 모습에서 자신감과 밝은 모습을 보게 되어 반가웠다.



그들은 성실했고 책임감이 강했다. 스스로 워라밸을 찾기 위해 주춤거림이 없었다. 그들은 개발이 본격화되었던 8-90년대에 서구식 교육을 받았고 서구식 삶을 추구해 왔다.



주말이면 그들은 이웃집 놀러 가듯이 국경 넘어 션쪈(深圳)의 밤 속으로 흘러들어 갔고, 마카오(奧門)의 카지노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들은 성실하게 일했고 일한 만큼 열심히 즐겼다.



하지만 그들의 밝은 표정 뒷면에 어둡고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1997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 네 마리의 용 (四小龍):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폴 (중화권에서는 Dragon 대신 Tiger 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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