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따라.. <15>

MID-LEVELS에 부는 바람(b)

by Morpheus


어렸을 때 산촌(山村)에서 생선이나 육류는 명절이나 제사 때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 이었다. 생선은 주로 a간돔배기와 쇠고기 산적(散炙) 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먹는 기름진 음식은 여지없이 배탈을 몰고 왔다.


토사(吐瀉)를 하고 나면 뜨거운 아랫목에 배를 깔고 누워서 참는 게 처방이었다. 그래도 아파서 참지 못하면 할아버지는 시렁 위에 나무 상자를 내려 창호지에 눌어붙은 까만 뭔가를 떼어 뜨거운 물에 녹여 마시게 했다. 잠시 후면 신기하게 아픔이 가셨다.


그것이 b아편(阿片/鴉片)인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홍콩은 서방에서 볼 때 중국으로 통하는 관문으로써 최적의 지리적 장점을 갖고 있다. 특히 해양국가인 영국에게는 동방 진출을 위한 핵심적 위치였다.


영국은 청나라와의 차 비단 도자기 등 수입 으로 무역 불균등이 심했다. 당시 영국은 식민지였던 인도로부터 대량의 아편을 청나라에 밀수시켜 아편중독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다.


청나라 관료 린제쉬(林則徐)가 아편을 몰수 폐기함으로써 아편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영국을 c1.2차 전쟁을 승리함으로써 홍콩섬 과 구룡반도 남부를 할양(割讓) 받았다.

이후 홍콩의 경계 확장조약을 통해 심천에 이르는 구룡반도의 북부인 신계(新界: New Territories) 지역을 99년간 조차(租借) 하였다. 이는 다분히 영국의 의도적 침략 행위로 홍콩을 식민지배하게 되었다.




영국이 홍콩의 경계확장을 위해 신계(新界) 지역을 99년간 조차(租借)한 1898년 협정을 기준으로 볼 때, 1997년이 반환 시점이 된다.


신계(新界) 지역의 조차반환 시점이 가까워 지자 영국은 홍콩 면적의 90%를 차지하는 신계지역을 분리 반환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홍콩을 영국의 지배하에 둔다는 것이 외교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불가능하다 고 판단하였다.




한편 1978년 이후 등장한 등샤오핑(鄧小平) 은 홍콩을 주권회복과 민족주의 관점에서 반환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사실상 영국은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1982년 드디어 영. 중이 홍콩반환 의제를 테이블에 올리고 마주 앉았다. 홍콩(香港)은 영국에게는 반환(返還), 중국은 회귀(回歸) 의 의미를 가졌다. 회귀(回歸)를 반기는 중국보다 반환하는 영국의 우려가 높을 수 밖에 없었다.


우려의 중심에 홍콩시민이 있었다. 6-70년 대의 문화 대혁명을 지켜본 홍콩시민들의 불안은 휘황찬란한 빅토리아 만( 灣)의 불빛 속으로 무겁게 퍼져나갔다.

MID-LEVELS에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불안의 바람이었다..


a 간돔배기 : 소금에 절인 상어고기

b 아편(阿片: Opium의 音譯/鴉片: 아편의

검은 덩어리를 의미하는 중국어)

c 1차 아편전쟁 1839-1842

2차 아편전쟁 1856-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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