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Levels에 부는 바람(c)
타이쿠싱(太古城)의 康怡花園(Kornhill Apartment)을 출발하여 中環(Central)의 사무실로 오는 Island Eastern Corridor 고속도로는 막힘이 없어 항상 상쾌했다.
푸른 칼날같이 생긴 중국은행 건물을 바라 보며 Mid-Levels로 올라가는 꾸불꾸불한 길을 운전하는 기분은 언제나 가뿐했다. 출근하면서 딸아이의 등교를 시켜주는 편익(便益)도 누렸다.
Victoria Peak의 중턱에는 조밀(稠密) 하지 않게 들어선 주택들이 고급스러웠다. 바로 눈아래 펼쳐진 푸른 바다와 반짝이는 물결 넘어 마주 보고 있는 까오룽의 침사초이가 한눈에 들어와 누가 보아도 최고의 주거 입지였다.
Mid-Levels는 홍콩 초기부터 영국에서 날아온 고급 관료들이 살았고 홍콩의 재계 부유층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었다. 습도가 높아 답답한 바닷가 낮은 지대보다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높은 지역의 Mid-Levels 가 좋았다.
반면 홍콩의 최상위 갑부들은 노출된 개방형 의 Mid- Levels 보다는 The Peak이나 Repulse Bay, Deep Water Bay 등지의 은둔형 독립 택지(宅地)를 선호한다고 했다. 그래도 Mid-Levels는 모두가 동경하는 주택지였다.
홍콩의 중국 반환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한 시점은 1982년부터였다. 사실상 반환에 대한 홍콩주민들의 인지와 우려는 1960년대부터 시작했다는 시각도 많다. 그 우려는 주로 이민의 형태로 나타났다.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지가 홍콩민들의 선택지였다.
1982년에 마주한 영. 중 반환협상은 1984 년 12월 19일 베이징(北京)에서 *"중. 영 홍콩반환 공동선언 (Sino-British Joint Declaration)"에 서명함으로써 마무리 되었다.
1997년 7월 1일부로 홍콩을 중국에 반환 한다는 성명이었다. 1898년 구룡반도의 신계지역(新界地域: New Territories)을 조차(租借)한 지 99년 만에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는 역사적인 선언이었다.
1977년 홍콩 현장에서도 확인했지만 홍콩 반환 시점의 도래(到來)는 먼저 일반 시민 들에게 해외이민 분위기를 팽만(膨滿) 하게 했다. 그리고 막상 1984년 베이징의 "중. 영 홍콩반환 공동선언"이 발표되자 사회적 불안 이 고조되고 Mid-Levels 등의 부유한 상류 층의 이민이 급증했다.
통계에 의하면 1987-1996년까지 10년 동안 약 50여만 명이 이민을 떠났고 캐나다로 전자 자금 이체만 350억 불이었다고 하니 그 전체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부동산이 폭락하고 홍콩의 전문직 두뇌 이동 또한 급속히 진행되었다.
Mid-Levels에 "불안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다...
* 1984년 중. 영 홍콩반환 공동선언 (Sino-British Joint Declaration)은 당시 영국의 Margaret Thatcher 총리, 중국은 鄧小平 주석 때였다.
서명은 영국 외무장관 Jeoffrey Howe, 중국은 국무원 총리 자오쯔양(趙紫陽)이 했다.
Sino-British Joint Declaration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