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비에 젖은 香港 (a)
1977년, 홍콩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기 전, 비록 짧은 기간이긴 해도, 파리나 유럽의 나라들과 달리 크게 긴장하지 않고 지냈다. 모두가 열심히 일해서 잘 살아보자는 시대적 조류를 타고 있었다.
한국은 빠르게 성장하는 신흥공업국이었고, 선진국 영국의 통치하에 있었던 홍콩은 금융과 자유무역 서비스 산업을 기반으로 GDP per Capita는 한국의 3배 이상이 되었다.
그러나 서민들의 삶은 팍팍했다. 창문을 열면 옆 동(棟)의 삶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다닥 다닥 붙은 까오룽의 고층아파트며, 베란다에 널려있는 빨래들이 바람에 어지럽게 펄럭 였다.
고층 아파트 위를 날아 카이탁(啟德) 공항 활주로에 이착륙하는 항공기들이 아찔하게 보였다.
카이탁 공항의 Fictional Image
1994년 가을, 홍콩(香港)은 17년 전의 모습을 기억해 내기가 어려웠다. 까오룽을 마주한 홍콩섬의 스카이라인을 차치하더 라도 빅토리아 만(灣)의 바다 향기(香氣)가 달라져있었다.
바람이 고요한 날, 바다의 물비늘이 유난히 반짝였고, 홍콩인들의 표정은 밝았으나 생각 들은 잔잔했다.
Mid-Levels에서 만나는 홍콩의 행정관료 들은 세련되고 일처리가 능숙했다. Feedback은 어김이 없었고 정확했다.
빠르고 스타카토(Staccato)의 딱딱한 광둥어(Cantonese) 사이사이에 영어와 푸통화(普通話)들도 들려왔다.
네이비 블루의 정복 입은 경찰들은 세련 되었고 그들의 대민 서비스는 엄격했으나 따뜻했다. 교통 흐름에는 누구도 예외가 되지못했다.
언론사들의 기자들은 가까웠고 민원들에 대한 도움은 쉬웠다.
까우룽과 홍콩섬을 연결하는 해저터널은 있었으나 사람들은 스타페리가 더 편하다고 했다. 94년에는 이미 홍콩 지하철 MTR (港鐵:Mass Transit Railway)이 까우룽과 홍콩섬의 대부분을 연결하고 있었다.
마카오(奧門) 주하이(珠海)로 가는 뱃길은 이웃 나들이 마냥 쉬웠다.
마카오나 중국 본토가 아무래도 홍콩보다 모든 게 저렴하기에 사람들은 주말이면 국경을 넘었다. 마카오에서 주말을 보내고, 국경 넘어 주하이(珠海)에서 시장을 보아 홍콩으로 돌아왔다.
90년대 중반에 이미 국경은 낮았고 희미해지고 있었다.
1984년 중. 영 공동선언(Sino-British Joint Declaration)에 따라 일국양제 (一國兩制)를 위해 1990년 제정된 홍콩특별행정구(HONGKONG SAR)의 기본법 적용일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