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따라.. <18>

1997년, 비에 잦은 香港(b)

by Morpheus


1994년, 홍콩에서 맞이하는 첫 연말의 분위기는 요란했다. 모임이 많았고 사회적 연대가 깊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임에서 소외되거나 주류 비주류도 없었다.


직위나 계층의식이 엷은 사회로 변모해 있었다. 서구 영국의 문화이식(文化移植)의 결과인지 사회주의 중국의 문화 탓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본국의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일정들이 빡빡했다. 회의와 출장이 많았다. 주말에는 협력업체들의 골프모임에 불려 다녔다. 역동적인 홍콩의 삶이었다. 회사의 사업도 순조로웠고 본국으로 송금하는 액수가 날로 증가했다.

놀라운 사실은 홍콩을 방문하는 한국 여행자 들이 예상외로 많았고 한국을 방문하는 홍콩 인들도 폭증하고 있었다. 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해외 여행자유화로 출국자가 급증했던 시기였다.


홍콩에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운항 모습


여행 자유화 초기에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일본과 홍콩 등 가까운 아시아지역을 선호 했다. 특히 홍콩은 자유무역지역으로 쇼핑과 관광지로 주목을 받았고, 1997년 7월 1일 중국으로 반환하기 전 방문하는 특수(特需) 가 있었다.

홍콩은 명실공히 세계적 금융의 중심으로 한국은 거의 모든 은행과 제 2 금융권까지 홍콩에 지점을 개설하고 있었다.

90년대 초반에 홍콩에 진출한 한국금융회사 들이 일본이나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단기 저금리 외화를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은행 들을 통해 차입하였고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아시아 국가에 투자하는 업무를 했다.

1994년, 한국경제에 어두운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음을 감지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않았다. 국가신용도는 높고 탄탄했으며 원화환율도 변동없이 단단했다. 무역은 경상수지는 적자였으나 증가추세를 유지 하고 있었고 7-8%의 경제 성장률은 지속 되고 있었다.


1996년, 소위 선진국 클럽이라고 하는 OECD에 가입했다. 설익은 자신감, 샴페인 을 너무 빨리 트떠렸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홍콩에 진출한 한국의 기업들은 활발했고 교민사회의 분위기도 낭랑(朗朗) 했다. 新界(New Territory)에 있는 HongKong Royal Golf cc, 란타우섬의 Discovery Bay Golf cc, 그리고 청수만 (淸水灣:Clear Water Bay)의 멋진 골프장 에는 한국인들이 북쩍였다.

1990년대의 중반을 넘어서기 바쁘게 일본의 버블붕괴의 여파로 몰아친 금융위기 와 미국과 유럽은행들의 리스크 회피로 아시아에 풀렸던 자금들을 회수하는 움직임 이 회오리바람처럼 불었다. 단기외채에 대한 만기연장이 거부되고 특히 한국 금융시장의 외환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홍콩에 있는 국내 모은행 지점이 차입한 일본의 단기외채가 만기연장이 거부된 사건이 외화자금 압박으로 이어지는 계기를 촉발하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홍콩에 진출한 한국 금융업계에 무겁고 칙칙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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