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玉) 빛 천지(天池)

백두산 등정기(登頂記) 2002년 9월1일

by Morpheus


장백산맥(長白山脈) 입구에 들어서니 멀리 백두산의 언저리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 한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연막에 가려 봉우리는 볼 수 없었으나 그 장대한 위용 (威容)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왠지 안내를 하는 이 선생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백두산 천지가 과연 자신의 자태를 보여줄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 이다. 가끔 한두 방울 떨어지는 빗방울도 심상치 않았다. 차창을 때리는 빗방울은 빗방울이 아니라 차라리 굵은 물방울이라 불러야 했다.


이 선생은 지프의 액셀러레이터를 더욱 세차게 밟기 시작했고, 시멘트로 포장된 등정로(登頂路) 위로 차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 선생의 침묵 속에서 우리도 함께 침묵하며 천지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보았다. 지프 백미러 옆에 붙어있는 고도계(高度計)가 1,200미터를 가리킬 때, 아내와 아이들은 귓속의 통증을 호소했다.


평지를 달리는 것 같아도 실제는 경사가 크다는 이 선생의 설명이다. 착시(錯視)현상 일 게다. 한라산 중턱에서도 쉽게 경험하는 고소(高所) 지역 평지의 특이한 현상이다.


울창한 원시림 사이로 잘 정비된 도로를 수십 굽이돌고 돌아, 백두산 중턱에 들어서니 멀리 장백(長白)폭포의 웅장한 모습이 오른쪽 시야에 들어온다. 마치 그림 속에 머물고 있는 듯 소리도 움직 임도 없다.


아마도 가까이 보이긴 해도 상당히 먼 거리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딸아이가 카메라 가방을 열기 시작한다. 내심 백두산 입구부터 촬영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나, 여간하여 감동을 잘하지 않는 성격을 아는지라 다그 치지 않았는데 장백폭포의 장관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아빠 얼굴을 먼저 비추며 장난을 걸어온다. 폭포를 지나도 굽이진 산길은 계속 이어진다. 길옆의 나무숲이 차츰 낮아지고, 목장 같은 넓은 초원이 갑자기 나타난다.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니 난데없이 어지럼증이 찾아온다. 마치 방금 이륙한 항공기를 타고 있는 것처럼 지나온 밀림이 커다란 병풍처럼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천길 만길이나 되는 낭떠러지가 길 왼편에 도사리고 있으니 차마 바라볼 수가 없다. 바로 거기가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임을 느낀다.


앞서 가던 차량의 행렬이 머무는 곳이 나왔 다. 고개를 들어보니 땅과 하늘이 맞닿아 있고, 스산한 날씨 속에 백두산의 정상(頂上) 이 거기 그렇게 서 있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고, 숨이 차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와 딸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바로 앞에 있는 산꼭대기에가 있었다. 마지막 남은 200여 미터의 중간쯤 올랐을 때, 갑자기 심한 현기증과 구토증이 찾아왔다.


그렇게 오르고 싶었던 천지(天池)였는데 웬 구토증인가? 큰딸도 같은 증세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바로 발아래 펼쳐진 천지 (天池)의 물빛이 돌연 나타난 태양에 반사 되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한참을 뒤돌아서서 심장의 고동을 낮추고, 몇 번이고 눈을 비비고 난 후에야 천지 쪽을 향할 수 있었으니, 백두산 정상이 사람을 맞이하는 심사를 모르겠구나.


아내와 둘째 딸도 가뿐 숨을 몰아쉬며 말을 잊고 있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드는 그 어떤 정기가 온몸을 조여 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천지(天池)가 하늘을 품고 있었 고, 하늘이 천지 안에 있었다.



이 세상 어느 곳에 저 옥(玉) 빛 천지(天池) 보다 빛나는 옥빛이 있을까? 만약 여의주 (如意珠)가 있다면 저토록 빛나는 옥빛일 까?


하늘에 움직이는 구름의 형상에 따라 천지의 옥빛은 어두워졌다 다시 반짝이고, 남색으로 청색으로 변화무쌍하다.


하늘이 천지로, 천지가 하늘로, 어느 곳이 천지며 어느 곳이 하늘인지 모르게 변화하는 옥빛의 장관(壯觀)이 바로 현기증과 구토증 주범이었다.


바람은 불지 않는데도 , 구름은 다가왔다 사라지고, 물결이 없는데도 천지 위엔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다.


발아래 벌어지고 있는 천지의 파노라마를 보는 듯 아니 보는 듯 열여섯 높고 낮은 봉우리는 묵묵히 서 있고, 하늘 아래 미물 같은 사람들은 옥빛 천지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진 찍기에 마냥 분망하다.


우리는 겨우 천지의 겉모습만 보며 이토록 감탄하고 있지만, 380여 미터도 넘는 천지의 깊은 수심(水深) 속을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워진다. 누가 이토록 신비한 산과 천지를 여기에 만들어 놓았을까? 눈앞의 천지를 보면서도 신비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산정(山頂)이 갑자기 빙글빙글 돌기 시작 한다. 하늘이 돌고 있는지 천지가 돌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돌고 있는지도 모르는 데, 발아래의 옥빛 천지는 시시각각으로 몰려드는 안개구름으로 안색(顔色)이 자주 변한다.


낮게 내려앉은 구름 사이로 금방이라도 창조주가 내려와 속세의 인간들을 꾸짖기 라도 할 듯한 불안한 기운이 엄습한다.


저 칼데라호(CALDERA湖)의 천지를 가로 질러 동남 편에도 마치 천지를 호위하는 병사 들처럼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잠시 안개가 물러간 천지의 수면은 또 다시 현란한 불꽃놀이 화염처럼 반짝이기 시작한다. 오전 열한 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 천지의 잔치는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둘째 딸아이의 카메라가 바삐 돌아간다. 으스스한 바람을 타고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천지를 등지고 인간세상을 바라보니 사방이 캄캄한 밀림으로 덮여 있어 인간사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산정을 내려오는 가파른 비탈길은 마치 천지에 대한 미련을 빨리 잊으란 듯이 단숨에 미끄러지며 내려가게 만들어져 있다.


정작 옥빛 천지를 구름 속에 묻어 두고 돌아서는 발길은 가볍지가 않았다.


둘째 아이는 카메라를 접고 산정의 돌 몇 알을 집어 배낭 속에 고이 간직한다. 파극(破隙)을 통해 호반으로 내려갔더라면 빈 병에 옥색 천지의 물이라도 담아 올 수 있었으련만, 돌아서고 보니 아쉬움이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천지를 보았다는 기쁨 하나로 돌아서기엔 멀고 먼 천지 등정은 허무하기 그지없다.


이 선생은 이른 새벽 연길(延吉)을 떠날 때 불안했던 마음이 가셨는지, 아니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할 수 있어 다행인지 마냥 가벼운 기분으로 차를 몰아간다.


오를 때의 흥분으로 보이지 않던 길가의 고산(高山) 식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높고 척박한 땅에 살아와 그런지 작고 가냘프게 생긴 화초들이 많다.


물싸리, 장군풀, 두루미꽃, 구름국화며, 산할미꽃도 길가에서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장백폭포를 구경 삼아 차에서 내렸는데, 아내는 바위를 타고 올라 이름 모를 노란 꽃 몇 송이를 꺾어 내려온다. 모두가 어디서 본 듯한 꽃이며 풀잎이다.


한반도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백두대간 (白頭大幹)은 바로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산맥을 두고 일컬어 진다. 거꾸로 말하면, 지리산을 타고 북쪽 으로 올라가면 이 땅의 최고의 영봉(嶺峰)인 백두산을 만나게 된다.


한국의 모든 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다. 이 백두대간을 받치고 있는 산맥은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뻗어있는 장백산맥 (長白山脈)이다.


비록 지금은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북한을 통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 길림성 (吉林省)의 연길(延吉)에서 출발하여 백두산에 오르긴 하지만, 장백산맥을 타고 흐르다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정기(精氣)는 누가 보아도 한민족의 정신인 것이다.


흘러간 만주벌판의 역사의 주인공들을 들춰내지 않더라도 옥빛 천지를 오르내릴 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창 밖의 풍경이 그렇게 친밀하게 느껴짐은, 그리고 벌판을 메우고 있는 솔송나무, 자작나무, 가문비 나무, 잎갈나무, 종비나무, 갈나무며 칡줄기까지 어느 것 하나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음은 같은 정서의 공유이리라.


저 숲 속을 뛰어다닐 백두산 호랑이며 검은담비, 수달, 사향노루, 사슴이며 메닭, 메추리, 올빼미, 흰두루미, 재두루미, 숲새들이 모두 우리와 함께 태초부터 이 땅에 살아오지 않았는가?


백두산 등정로 입구를 뒤로하고, 차는 또 다시 아침에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려가고 있었다. 울창한 삼림(森林)은 끝없이 펼쳐지고, 어느덧 아내와 아이들은 피곤에 지친 듯 뒷자리가 조용하다.


유달리 북한 악센트가 강한 이 선생이 침묵을 깨고 길림성의 고위간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름이 만리(萬里)라고 하는데 젊었을 때 부터 승승장구 승진이 빨라 모두가 그를 ‘만리무운(萬里無雲)’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백두산에 여덟 번 올랐어도 한 번도 천지를 보지 못해 그 이름이 무색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김 선생은 단번에 천지를 보았으니 덕을 많이 쌓은 분”이라고 하니 듣기 싫은 말은 아니다.


아침밥을 먹었던 안도현(安圖懸) 붕원주가 (鵬源酒家) 안주인이 우리를 다시 반갑게 맞아준다. 고사리무침이며 멧돼지 고기볶음 을 시켜 먹고, 차는 다시 화룡(和龍)을 지나 용정(龍井) 비암산(琵岩山) 기슭의 일송정 (一松亭)에 멎었다.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만주벌판을 헤매다, 일송정에 올라 해란강(海蘭江)을 바라보며 울분을 달랬을 독립투사들의 심사를 아는지, 그 조그마한 정자 위에 부슬비가 내린다.


그 부슬비를 뚫고 해란강 끝자락엔 저녁 해가 이 나그네와 작별이라도 하는 양, 마지막 햇살을 비춰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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