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따라.. <22>

상해(上海), 상하이 상하이 (c)

by Morpheus


서양인들과 같이 외모가 다른 사람들과의 대면에는 분명 언어가 다를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되지만 일본이나 중국인들을 대하면 언어 선택이 망설여진다. 표정은 비슷한데 어떤 언어를 사용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략 56개 민족(民族:Ethnic Groups)으로 구분하고 있다. 주류는 한족(漢族)으로 9할을 넘게 차지하고 나머지는 소수민족으로 분류된다. 인구 비중은 낮지만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다.


전체 인구를 14억으로 유지되고 있다.

중국의 인구 정책을 들여다보면 많은 굴곡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말까지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여러 예외 조항은 두었지만 한자녀(One-Child) 정책을 꺼내 들었다. 주로 도시에 사는 한족(漢族)에게 강하게 적용했다.

농촌에는 첫째가 딸인 경우 둘째를 허용했고 소수민족에게는 다자녀를 허용했다.

남아선호(男兒選好) 사상이 강한 중국사회 에 한자녀 정책을 펴게 되면 동반될 문제들이 많을 것이란 점은 자명했다.


성비(性比) 문제와 불법 출산, 즉 제도권 밖의 출산이 성행했다. 태어난 아이 본인은 a흑해자(黑該子)로 취급되었다. 마치 서자 (庶子) 같았다.

한자녀 정책 위반자들에게 엄한 벌칙(罰款) 을 적용했다. 둘째나 셋째 아이를 낳게 되면 b초생(超生)으로 간주 평균 소득의 수십 배의 벌금을 부과하고 공무원이나 국영기업의 경우 승진불가, 강등, 해임, 당적박탈 등 가혹한 제재를 가했다. 강제 불임수술, 임신 중절 등도 강요되었다.

중국의 한자녀 정책은 1979년 말부터 2015년 10월까지 시행되었고 2016년 1월부터 두자녀 정책으로 변경되었다.


2021년 5월에 세자녀, 그리고 그해 7월부터 자녀수 제한을 철폐했다. 인구가 정책에 따라 출렁이는 현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특히 한자녀 정책을 강행했던 1980년 이후 출생한 아이들을 "빠링호우(八零後) 세대"라 하여 국가의 통제하에 태어난 "외동" 자녀 였다. 결과적으로 과보호와 과기대의 대상이 되어 "샤오황디(小皇帝)"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1960-70년대 한국에도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 아래 출산을 조절하려는 운동이 있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중국과는 달랐다. 세계 최빈국에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인 한국은 살벌한 벌칙으로 강제한 국가정책이 아니었고 사회적
계몽과 장려운동의 일환이었다. 제재 대신에 피임지원, 보건상담, 주택 우선배정, 군복무 혜택 등이 따랐다.

강물의 흐름을 강제로 막거나 방향을 전환 하게 되면 자연의 생태계가 무너지듯, 하물며 인간의 생식(生殖)과 번성(繁盛)을 강제하는 정책이나 운동이 인구절벽 (Demographic Cliff)이란 참담한 결과를 낳지 않았나 묻고 있는 것이다.

예전 우리 어머니들은 "자식 줄줄이 낳아도 제 복(福)은 차고 태어난다"라고 했으니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註)

a흑해자(黑孩子) 검은 아이라는 의미인데 공식적으로 호적에 오르지 못하는 아이를 일컬음


b초생(超生) 규정을 초과한 출산(出産)

작가의 이전글세월 따라..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