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上海), 상하이 상하이 (b)
우선 개인사를 먼저 안정시키라는 조언들이 많았다. 주거지를 정하는 문제가 쉽지 않았 다. 주거지의 선택에 대한 제한은 없었으나 안전과 생활의 편익을 위해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구시가지(舊市街地)인 홍치아오 (a虹橋) 쪽을 선택했다.
아파트의 단지를 화원(花園)이나 소구 (小區)라고 했다. 당시 외국인들이 주로 살던 밍두청(名都城)에 짐을 내려놓기로 했다. 단지 바로 앞에 프랑스의 Carrafour (b家樂福)가 있어 생필품 구입이 용이했다. 상해의 중산층들도 많이 찾던 외국 브랜드 마트였다.
상해시의 유관기관들과 교민 사회에 인사차 둘러본 당시의 분위기는 뭔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듯 들뜨있었다. 마치 6-70년 대의 우리나라 농촌의 새마을운동 현장 같은 모습이었다.
이른 아침, 중국어 개인교습받으러 사무실로 나가는 연안서로(延安西路) 길 옆 공원에는 체조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여기저기 보이고 쓰레기 줍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공원 곳곳에는 인민들이 "하지 말아야 하는 일곱 가지 준칙(c七不準)" 등의 공시(公示) 팻말들이 새워져 있었다. 대로변에 큼직하게 "d發展是硬理"나 "e沒有共産黨 就沒有 新 中國" 이란 현수막들이 걸려있었다.
그런데 상해는 이미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시스템이 깊숙이 작동하고 있었고 인민들의 삶 속에는 서구의 문명이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자본주의 보다 더 자본주의 나라같이 보일 때도 있었다.
상해가 은둔의 시간을 벗고 계명(啓明)을 지향(指向)하는 시선(視線)의 시간 위에 놓여있었다.
지나간 6-70년대에 졸업했던 우리나라의 이야기 같아보여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언어였고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들의 사고나 관습은 견고했고 변화는 더디었다.
체제와 이념이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현지 직원들은 조직의 관계가 수평적이었고 위계(位階)가 없었다. 인사차 들렀던 상해의 협력회사에서 점심시간을 맞았다.
구내식당이 아니라 산더미 같은 도시락을 실은 끌대가 복도를 지나면서 부서별로 배식하고 있었다. 함께 인사를 나눴던 총경리 (總經理:사장)가 했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직원들도 하나씩 , 나도 한 개, 동사장 (董事長:회장)도 한 개.. 이 얼마나 공평한 분배인가?"..
註)
a 虹橋(홍치아오) 무지개다리란 의미
b 家樂福 Carrafour의 중국어 찌아러푸
c 七不準/조금씩 다른 내용도 있었다
d 發展是硬道理 세월 따라 <13> 참조
e 沒有共産黨 就沒有新中國 '공산당이 없으면 새로운 중국도 없다'. 1940년대 항일전쟁 때부터 노래 가사로도 사용되던 중국의 핵심적 이념구호
七不準 이미지
1.不準隨地吐痰
(아무 데나 침 뱉지 마시오)
2.不準亂扔廢紙雜物
(휴지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마시오)
3. 不準高聲喧哗
(큰소리로 떠들지 마시오)
4. 不準說脏话
(욕하지 마시오)
5. 不準破壞花草樹木
(화초. 수목을 꺾지 마시오)
6. 不準践踏草坪
(잔디를 밟지 마시오)
7. 不準隨地大小便
(아무 데서나 용변을 보지 마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