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따라.. <23>

상해(上海), 상하이 상하이 (d)

by Morpheus


동북아의 금융중심인 홍콩(香港)과 주강 (珠江)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온 서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편익(便益)은 인민 들의 삶을 파고들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 시장경제라는 파도의 중심이 되는 지점이 상하이(上海)였다. 정치의 중심이 중난하이 (中南海)가 있는 북경(北京)이라면 경제는 황포강변(黃浦江邊)에 솟아오르는 포동 (浦東)을 품고 있는 상해(上海)가 있었다.

북경(北京)과 상해(上海), 이 두 개의 도시를 연결하는 지점(地點) 위에 조어(造語)된 경제체제가 "사회주의 시장경제"다. 사람들은 "aOxymoron적 체제"라고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실존체제가 되었다.

상해의 구도심지인 포서(浦西)의 번화가인 남경로(南京路)의 휘황찬란한 불빛은 서구의 유명브랜드 쇼윈도를 비추고 있었고 거리마다 독일의 고급 승용차들이 질주했다.


중국 전통식당에는 외국인들이 가득했고 b납면표연(拉麵表演)과 북경오리(北京 烤鸭) 요리시연으로 바빴다.

납면표연(拉麵表演) 이미지

2000년 초 당시 상해의 국유기업들에도 "c중조(重組)"라고 하는 구조조정의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1997년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외환위기에 따른 중조(重組)가 아닌 "d장쩌민(江澤民) 주석의 강화(講話)"에 따른 지시였다.

공기업의 "e철반완(鐵飯碗) 문화"에 대한 개혁을 강하게 주문한 지시였다.


상해방(上海帮) 출신인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강화(講話)는 경제의 중심지인 상해에 강하게 작용했다.

중국의 국유기업은 단순히 영리를 취하는 기업이 아니라 국가의 발전전략을 수행하는 조직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영리를 추구하는 역할 이전에 최고 지도자의 "강화(講話)"를 충분히 숙지(熟知)하는데 진력했다.

실제로 당서기(黨書記)의 지시사항을 학습하고 시험을 보는 장면을 목격한 바도 있다.


기업의 영리에 앞서 국가와 당의 이념을 앞세웠다. 상하이(上海)의 번화가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유 시장경제의 속도가 공존하는 상징이 되었다.

1997년 제15차 당대회 보고는 개혁심화가 주된 의제였다. 중국의 국유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 중요한 개혁의 지침이 되었다.


"f조대방소(抓大放小)"가 골격 이었다. 서방의 현대기업제도를 도입하여 시장 경제와 사회주의의 결합을 강조하고 있다.

상하이(上海)를 포함하여 전국적인 중조(重組)와 g하강(下岗)의 본격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남경로(南京路)의 번화가 모습 이미지




註)

a Oxymoron적 체제 형용모순적 제도

b 납면표현(拉麵表演) 국수를 뽑아내는

공연

c 중조(重組) 구조조정, Restructure

d 장쩌민 강화(講話) 당서기의 주요 연설

e 철반완(鐵飯碗) 철밥통으로 불리는 직업

f 조대방소(抓大放小) 대기업은 강화하고
작은 기업은 정리

g 하강(下崗) 재배치를 전제로 한 퇴직.

해고(解雇)와는 다른 개념, 하강(下崗)

생활보조금 지급, 재취업보장, 형식적인

소속 유지 등





작가의 이전글세월 따라..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