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는 선택이 아니라 전략이다

집은 '소비'가 아니라 '전략'이다.

by Jason

집은 단순히 '사는 공간'이 아니다. 삶의 큰 윤곽을 그리는 밑그림과 같다. 밑그림이 확실하지 않고 흔들리면 어떤 그림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집은 그 사람, 더 나아가 그 가족의 삶의 방식을 뿌리부터 정의한다. 따라서 이 관점에서 보면, 집은 '소비'가 아니라 '전략'이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는 집은 '투자'의 대상일 수도 있다.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집은 누군가에게 '투자'의 대상이거나 '소비'의 대상이다. 다만, 나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전략'이다. 이 관점은 단순히 머리로 떠올린 것이 아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같이 살아오면서 경험 속에서 뼈저리게 밤잠을 설치며 체득한 결론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 후 처음으로 30년 된 복도형 구축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 집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맞지 않았다. 방의 구조, 소음, 주차, 주변 환경 모두가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가장 먼저 맞지 않았던 것은 집의 구조였다. 무릇 집은 지어질 때 그 집은 그 시대의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구축 아파트는 거실을 중심으로 방이 위성처럼 달린 구조다. 그리고 공간의 효율성을 위해 거실과 주방을 합쳐 체감하는 면적을 극대화했다. 또 안방은 그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므로 가장 안쪽에 그리고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한다. 이 형식은 한옥 구조에서 유래되었다. 대청을 중심으로 각 각의 방이 붙어있는 구조다. 아파트가 막 지어질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시절에는 이 구조가 가장 익숙했을 것이다. 모두가 각자 방을 갖고 있고, 거실에서 만나서 화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이다.


하지만 어느새 복도식 구조가 생겼다. 복도식 구조는 거실과 주방을 볕이 가장 잘 드는 구석에 배치하고 복도를 길게 빼고 그 복도에 방이 붙어있는 방식이다. 이는 사생활 보호라는 가치가 개입된 결과이다. 집에 손님이 왔을 때 공용생활 부분과 개인 생활 부분을 분리하고 싶은 이유에서이다. 개인 간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양에서도 이런 평면도가 많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공용 부분과 생활 부분이 나뉜 구조가 편했다. 집에 손님이 왔을 때도 바로 거실로 안내하고 집안 내부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지어진 구축 아파트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침실을 오직 수면 공간으로만 사용한다. 어둡고 조용해야 하고, 따뜻하고 시원해야 한다. 그런데 안방이 너무 넓었던 탓에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방에 가구가 없어 소리가 울렸다. 넓은 방을 냉난방 하는 것도 어려웠다. 가뜩이나 부족한 단열과 기밀로 인해 냉난방 효율이 높지 않았다. 복도를 따라 집이 붙어있던 그 신혼집은 외부의 소음이 복도 쪽에 붙어있는 두 개의 방에 그대로 전해졌다. 당시 집에 방문해서 그 방에서 잠을 자던 지인이 새벽에 누군가가 하이힐을 신으며 '또각또각' 걸어오는 그 소리가 섬뜩했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복도와 붙어 있는 방이 아닌 제일 안쪽 방인 안방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소음이었다. 나는 수면 중 아주 미세한 소리에도 예민했는데, 수면 중 스마트폰이 완충되었을 때 충전기 내는 미세한 고주파음에 깨서 충전기를 뽑고 자는 일이 많았다. 피곤해서 깊게 잠든 날에는 아내가 침실에 와서 옆에 누워도 깨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밤은 깊게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평균적으로 하루 못 자고 하루 잘 자는 그런 패턴을 보여주는 수면 습관이 형성되어 있었다. 못 자는 날이나 다음날 일정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더 일찍 자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면 예민함은 극도로 치솟았다. 소음이라는 게 한번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면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데, 나는 구축 복도형 아파트에서 신혼집을 차리면서 신경 쓰게 된 소음이 있었다. 취침을 위해 소음이 줄어드는 밤에 `우우웅...쿵`하는 낮고 묵직한 소음이 들려왔다. 대체로 새벽 1시까지 그런 소리가 났었다. 나는 그 소리가 너무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새벽에 옆집부터 윗집까지 돌아다니며 소음의 원인을 찾아보았지만 실패했다. 며칠이 지나서야 원인을 찾았는데, 바로 엘리베이터의 소음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세 집 정도 떨어진 우리 집의 안방까지 소음이 전해졌다. 사람의 이동이 거의 없는 새벽 2시 이후부터는 그 소음이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틀에 하루는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구축 아파트의 특성상 층간소음이 심했다. 당시 윗집에는 고학년 초등학생 아이를 둔 부부가 살았는데, 나는 그 부부가 몇 시에 일어나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협탁 옆에 둔 스마트폰의 알림이 7시에 진동과 함께 울렸기 때문이다. 그 진동 소리는 아랫집인 우리 집에도 들렸다. 물론 나는 그 소음과 진동에 깼다. 결국 나의 수면은 새벽 1시쯤에 겨우 잠들어서 아침 7시에 강제로 깨야 하는 고통을 겪었다. 신축 아파트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로 옮긴 신축 아파트에 거주할 때의 일이다. 윗집에는 혼자 사는 젊은 청년이 살았는데, 이 친구가 미라클 모닝을 한다고 새벽에 청소를 했다. 물걸레로 방을 닦을 때 물걸레가 걸레받이나 가구에 부딪히는 소리, 화장실 세면대를 '뽁뽁'거리며 닦는 소리가 새벽 6시부터 들려왔다. 미라클 모닝은 좋은데 굳이 남에게 피해를 줘가면서 해야 했던 것일까?


주차 문제도 있었다. 대부분의 구축 아파트는 주차 지옥이었다. 지방에 사는 우리조차 주차 지옥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에 운동하고 집에 돌아오면 주차할 곳이 없어 매일 큰 길가로 나가서 주차했다. 불법주차는 일상이었다. 이중 주차는 기본이고, 근처 고등학교나 공터를 찾아 주차할 정도였다. 신축 아파트로 넘어가며 주차 문제는 개선이 되었지만 한두 번의 전세 사이클(2~4년)이 넘어가니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주변 환경은 더 큰 문제였다. 구축 아파트는 사실상 '콘크리트 덩어리'였다. 주차장과 건물, 그리고 작은 놀이터뿐, 공원도 조경도 없었다. 신축 아파트로 옮긴 뒤에는 헬스장, 놀이터, 상가 등 쾌적한 환경이 반가웠지만, 대신 '사람'의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예컨대 지하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코로나 초기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골프채를 들고 관리소를 위협하며 무력시위를 하거나, 자신에게 민원을 넣는 사람에게 겁주기 위해 아파트 입구에서 골프채를 옆으로 휘두르는 일까지 있었다. 놀랍게도 모두 한 사람이 한 짓이었다. 아파트는 '공용 생활'의 공간이기에 불특정 다수의 민낯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주거는 단순히 사는 공간이 아니라 나의 삶의 방식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후 우리는 위 문제들에 해방되고 싶었다. 적어도 소음문제만큼은 해방되어 편히 자고 싶었다. 우리 생활에 맞는, 우리만의 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부터 우리는 전략을 세웠다. 그 선택이 바로 우리가 직접 집을 짓기로 결심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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