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의 뉴욕 인턴 후, 한국에서 내가 선택한 최악의 패션 회사
뉴욕에서 돌아온 나는 다시 일상을 정비했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며, 긍정적으로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친구들도 내 표정이 좋아졌다고 했다.
“이제 좀 살만해 보인다.”
가끔 뉴욕의 광활하고 분주한 풍경이 그리웠지만,
그곳에는 내 것이 없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진짜 나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시작해보자..'
그렇게 새로운 뉴욕의 짧은 경력을 더해,
나는 다시 취업 활동을 시작했다.
패션 회사 구직 활동 중..
두 곳의 회사가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첫 번째 회사는 말했다.
“뉴욕의 경험은 나중에도 큰 자산이 될 거예요.
우리 회사에서는 이런 업무를 하게 될 거고,
앞으로는 이런 방향으로 함께 가면 좋겠어요.”
면접이 끝나고, 며칠 내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두 번째 회사는 달랐다.
“당신이 뉴욕에서 참여했던 프로젝트의 대표가
우리가 거래하려는 곳이에요.
그 업무를 직접 맡아보면 어때요? 주임 자리를 줄게요.”
면접 장소는 회사가 아니라 근처 카페였다.
그날, 바로 일을 시작하자고 했다.
첫 번째 회사의 답변을 기다려볼까 고민했지만..
나는 또 눈앞의 선택을 해버렸다.
‘이쪽이 더 나에게 맞을지도 몰라.’
그렇게 두 번째 회사를 택했다.
다음 날, 첫 번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 팀에서 함께합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취업을 했다고 말했다.
그 결정은 지금도,
내 인생의 ‘후회되는 선택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나마 정상적인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항상 선택은 나에게 참 어려웠다..
두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알게 됐다.
그 대표는 내가 함께했던 뉴욕 프로젝트 대표와
거래를 맺고 싶었던 것뿐이라는 걸..
나는 그저 신입이고, 이용하기 좋은 디자이너였다.
내가 맡은 일은 내 역량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루하루 의미 없는 실험 속에서 소모됐다.
사무실 한켠에는 늘 술 냄새가 났고,
그의 조롱 섞인 말과 무책임한 태도는
내 자존심을 계속 갉아먹었다.
곧 급여도 제대로 주지 않더니,
끝내는 돈까지지 빌리려 했다.
그는 진짜 회사를 운영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패션 회사 놀이’ 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희망에 가득찼는데,
몇 달 만에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나는 더 이상 회사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하루하루 나 자신을 원망했다.
“왜 늘 한 치 앞만 봤을까.
왜 사람과 환경을 보지 못했을까.”
나는 어리고, 어리석고,
판단할 줄 몰랐다.
그저 내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반복된 실패 끝에
결국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내가 브랜드를 해야겠다.”
그날 이후, 나는 방 안에 틀어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