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했지만, 그땐 그게 전부였다
브랜드를 한다는 것.
그건 거창한 비전이나 계산된 목표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패션을 하고 싶었고’,
‘내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저 사람들도 하는데, 나는 왜 못 해?”
그건 오기였고, 분함이었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내가 경험한 회사들 속에서
‘패션 디자이너’란 직함은
그저 화려한 가면에 불과했다.
불나방처럼 날아드는 열정은
누군가에겐 우스운 광기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화려함과 현실의 무게 사이에서
나는 버티는 법을 배웠다.
그들 역시 그 틀 안에 갇혀 있었다.
나는 그들을 이기고 싶지도,
무엇을 배운 건지도 잘 몰랐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나는, 그저 ‘내 일’을, ‘내 브랜드’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 속 나는
돈도, 경험도, 배경도, 인맥도… 모두 부족했다.
300만 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패션지원센터에 지원해
책상 하나와 소량의 샘플비를 받았다.
그렇게 브랜드를 시작해보려 했지만,
그곳은 성장 시스템이 아니라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었다.
분기별 실적이 없으면 나가야 하는 구조.
그 안에서 나는 내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일을 했다. 무대의상 디자이너, 패턴사, 강사…
투잡은 일상이 되었고,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갔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계획 없이 시작된 브랜드는 또 다른 투잡을 낳았다.
벌어야 했고, 써야 했지만, 돈은 돌지 않았다.
대출은 한정적이었고, 생활비조차 빠듯했다.
때로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왜 달리고 있는 걸까”
나조차 그 답을 몰랐다.
그럼에도 마음만큼은 쉽게 놓아지지 않았다.
물론,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기쁜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내일이 조금 기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매출,
끝을 알 수 없는 막막함, 그로 인한 조울과 공허감.
결국 남은 건, 5년간 매달 갚아야 할 대출뿐이었다.
돌아보면, 그때 나는 사업가가 아니라,
그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20대는 어느새 30대가 되었고,
나는 40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아둥바둥 살아온 그 시간 동안,
패션은 더 이상 ‘하고 싶은 꿈’이 아니었다.
미워도 버릴 수 없는 생존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패션계를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날 수 없었다.
어쩌면 순서가 잘못된 건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그에 따르는 준비와 책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오기와 열정만으로 시작했을 뿐이었다.
결국, 진짜 불나방은… 나였다.
꿈은 때때로, 나 자신까지 태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