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손

시흥리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by 지향


엄마에게 배운 수많은 것 중 하나. 어디 방문할 때 빈 손으로 가지 않을 것.

엄마가 우리에게 직접 말로 가르치거나 설명한 적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덕에 고마움을 표하거나 두 번째로 방문할 때, 그냥 기분이 좋을 때, 그저 주고 싶을 때, 누군가 생각날 때 나는 약소하든 거대하든 선물을 받을 상대를 생각하며 무엇이든 사들고 간다.


몇 주 전, 시흥리에 있는 한 여성전용 게스트하우스에서 외박을 했다. 친절하고 깔끔하신 사장님 덕에 두부전, 한치와 오리고기구이 그리고 다른 게스트 분이 배달 주문하신 육회까지, 혼자 여행하는 뚜벅이가 쉽게 못 접할 음식들을 저녁으로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태어난 지 4개월이 채 안 되었지만 깨나 개구진 어린 강아지와 함께 하하호호 밤을 보내고 하이얀 침대에는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어버렸다. 매트리스는 또 어찌나 편하던지, 잠자리에 예민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어 나는 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평대 해변과 세화리를 구경하고 다시 숙소에 가 짐을 찾고 원래 내가 지내는 남원의 숙소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내 제주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기상 예보에 비구름 표시가 있어 육지에서부터 챙겨 온 남색 바탕의 꽃무늬 우양산을 챙기려고 하는데 방을 아무리 뒤져도 없는 것이다. 흠.. 우선 급하니 외출을 했고 다행히 그날 비는 오지 않았다. 역시 변덕 심한 제주 날씨...


그런데 며칠 뒤, 성산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SNS에 내 우양산 사진과 함께 주인을 찾으시는 글이 올라왔다. 그렇다. 내가 두고 왔지. 당장이라도 가고 싶었으나 내 근무 스케줄과 향후 일정과 또 여러 상황을 생각했을 때 아무래도 당장 일주일 내로는 어려웠다. 그렇게 2주가 지난 뒤에야 드디어 다녀왔다.


사장님이 지난번 맛있는 저녁 식사를 선사해주시고 체크인 전과 체크아웃 후 짐을 맡겨주신 것, 그리고 내 우산을 고이 챙겨주신 것이 감사해 시흥리보다 살짝 아래에 있는 성산의 보룡 제과에 들려 빵 몇 가지를 샀다. 그리고 나와 함께 지내는 스태프들과 먹을 빵도 사고. 아마 사장님에 대한 감사함보다 나의 제주 빵 맛집 도장깨기에 대한 욕심이 더 컸던 것 같기도 하다. 마늘바게트와 고구마 파이가 유명하다는 데 안 먹어볼 수가 있나! 그렇게 사장님을 방문하여 빵을 드리니 또 며칠 전 딴 고추라도 주려고 하시는 사장님의 마음이 이미 감사하여 손사래 하고 대화 몇 마디 나누고 얼른 왔다. 이 날 내 외출의 목적은 순전히 맡겨주신 우산을 찾아오는 것. 우산도 찾아왔는데 또 사장님이랑 대화도 나누고 따뜻한 마음씨까지 느끼고 올 수 있다니, 버스로 왕복 3시간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아, 보룡 제과 도장깨기도 성공하고 시흥리에 도착하니 어떤 시고르자브종 강아지가 날 3분여간 따라와 미소도 지어지고 짠해지는 하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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