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하고도 낯 가려요.
A : 다른 사람에게 마음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사회생활은 잘 해낸다. 먼저 말도 잘 걸고 농담과 칭찬 그리고 꽤나 진심 어린 위로도 나눈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그저 사회생활의 일부라서 일처럼 해낼 뿐 그 사람에 대해 연민이나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나를 좋게 생각할까 방법을 연구하고 시도해 볼 뿐, 진심으로 친구가 되고 싶진 않다. 평범하고 좋은 평가를 받는 "나"가 되고 싶을 뿐이다.
B : 마음이 약해 동물이 유기되거나 괴롭힘 당하는 영상은 못 본다. 눈을 질끈 감고 넘기고 우연이라도 봤다면 잔상이 남아 마음에 오래 남아 힘들어한다. 고마웠던 일은 두고두고 가슴에 새기며 언젠가 꼭 돌려주려 한다. 힘들었던 일은 일기에도 쓰지 않고 가능한 한 빨리 망각하려 애쓴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보고 미리 배려하고 따뜻한 말을 건네며 상대가 불편할 상황을 미리 차단하여 갈등을 만들지 않는다.
A와 B 같은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가
아마도 B일 것이다. 그런데 A와 B가 같은 사람이라면?
나는 내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없으면서 짐짓 좋은 사람 인척 하는 A라고 느꼈다. 그리고 나를 들여다보니 나는 분명히 B의 모습이 있다. 그렇게 모순된 나를 보며 나의 어떤 모습에 본질에 가까울까 여러 날 생각해 보고서야 내가 B의 모습을 가리기 위해 A모습을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정이 버겁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나에게 감정은 버거웠다. 어릴 적 부모와의 애착이 결핍된 상태로 어영부영 나는 자라났고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을 혼자서 배웠다. 나 자신의 중심이 없는 아이가 자라나 타인과 부딪히면 늘 근간이 흔들려 중심을 잃어댔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없어지고 상처는 쌓였다. 30대가 된 지금의 내 모습은 딱딱한 껍데기가 없이 바다에 던져진 민소라 같다. 내가 나를 제일 한심하게 생각하며 무시한다.
그렇게 학교에선 뒤처지지 않으려 눈치껏 깨금발을 서며 걸었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할 땐 모범적인 인간의 모습을 따라 하며 밝고 긍정적인 어른인 척하려 무리해 왔다.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는 사람 앞에서도 나는 나를 변호할 줄 몰랐기에 그 사람이 생각하는 내가 나인가 보다 했다. 가끔은 억울한 일도 당했는데 그럴 땐 나의 주장을 하지 못했다. 아무도 믿어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1인데 늘 내가 아닌 다른 모두는 100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늘 주눅이 들었다. 꿈속에서조차 친구와 오해가 생겨도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 답답해하는 꿈을 꾸곤 했다.
정말 친했던 친구와 자연스레 멀어지기도 하고 정말 좋아하던 사람에게 거절을 당하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일들이 살아가며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 곁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따뜻한 사람을 만나면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두고두고 그 마음을 빚진 기분이 들어서 어떻게든 고마운 마음을 갚아주고 싶어서 필요 이상으로 비위를 맞추기도 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였다.
나를 바닥으로 떨어트리는 것도 타인이었고 나를 가장 높을 곳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타인이었다.
내 감정의 중심이 나에게 없어서 그렇게 중심을 잃어댔다.
그래서 감정이 버겁게 느껴졌다. 타인은 너무 쉽게 나를 장악하고 흔드는 존재니까 나는 오히려 감정을 차단하며 나를 지키고자 했다. 내 안에는 껍데기 없는 민소라가 산다. 그걸 들키면 안 되는 비밀처럼 꽁꽁 싸매고 껍데기가 있는 척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드라마든 영화든 첫 시도를 어려워한다.
그래서 봤던 드라마를 계속 틀어놓고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땐 오래 고민하거나 시작하자마자 몇 분도 못 보고 끄곤 한다. 감정을 잘 그려낸 작품을 볼 때 더욱 힘들어 서서 로맨스나 감동이 있는 드라마보다 추리드라마를 본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건에 집중할 수 있는 걸 봐야 마음이 편하다.
그런 방식이 강한 사람인 줄 알았다. 감정을 잘 차단하고 티 내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게 강한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감정이 없는 무색의 인간이 돼버린 것 같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오히려 기뻐야 할 때 충분히 기쁘고 슬퍼야 할 때 충분히 슬프다고 한다.
나는 슬퍼야 할 때 나를 검열했다. 내가 슬픈 게 맞아? 이게 울 일이 맞을까? 오버하는 거 아니야? 라며 슬퍼도 슬플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나를 검열했다.
회사에서 업무를 잘 해내서 상을 받을 때도 기쁨을 만끽하고 나를 칭찬해 주지 못하고 이렇게 기뻐하다가 다음번에 이만큼 못해서 사람들을 실망시키면 어쩌지 초조해하며 충분히 기쁠 자격도 빼앗아버렸다.
매사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눈앞의 일을 불안해하느라 마음 체력은 방전이었다. 그런 와중에 나를 자극하는 많은 감정들은 그저 피곤할 뿐이다.
내 인생에서 만난 사람 중 M은 가장 건강한 정신을 가진 친구였다.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나의 감정을 편견 없이 들으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나보다 나의 일을 더 기뻐해주는 친구였다. 항상 하고 싶은 일이 많았고 그걸 실행할 체력도 있었다.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가 하기 싫어져도 자신을 한심하게 보지 않았다. "그냥 내가 관심이 없어졌어 다른 거 해볼래/ 나 오늘 힘들어 아무것도 안 하고 쉴 거야" 자신의 감정에 떳떳했다.
그 친구와 몇 년 간 친하게 지내며 나의 감정 방식의 좋은 롤모델을 만났다. 나는 어떤 일을 마주할 때 M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상상하면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몸의 체력만 중요한 게 아니다. 정신력도 길러야 하는 체력이다. 기쁜 일을 되새김질하며 힘들 나를 위로하고 내가 지쳤다는 걸 깨닫고 나를 그곳에서 분리시켜 충분히 쉬게 하는 등 감정체력도 보살펴줘야 한다.
나는 내가 어떤 감정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서 만끽하는 날을 꿈꾼다. 3년 전보다 지금 내가 더 감정에 솔직하니까 매일매일 눈치채지 못할 새에 내 감정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늦은 것뿐이지 끝난 게 아니다. 나는 아직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