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할걸
결혼을 9개월 앞두고 신혼집을 먼저 구했다. 여유롭게 가구도 구매하고 침대도 들여놓았다. 우리가 고른 것은 통 매트리스에 칼킹 사이즈 침대였다. 이 침대가 우리에게 그 많은 갈등을 가져올 줄 그땐 몰랐다.
나는 아직 자취집이 남아 있는 상태라 한 동안은 주말에만 신혼집에서 생활했다. 그때까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전세 만기가 되면서 우리의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렇듯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게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나는 이미 각오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통 매트리스는 생각보다 탄성이 좋았다. 잠을 자다가 내가 뒤척이면 남편이 깨기 일쑤였고 나도 남편이 다리를 툭 내려놓거나 뒤척이면 그 반동에 잠을 깨곤 했다. 우리는 하필 외동딸, 외동아들이었기에 살면서 누구와 살 부대끼며 잔 경험이 없어서 누군가 옆에서 자는 것 자체도 불편한테 매트리스까지 반동을 더하니 잠을 잘 자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래도 언젠가는 적응하겠지 하며 넘기려고 하는 편이었지만 잠에 예민한 남편은 꽤나 괴로웠나 보다. 같이 산지 3개월이 지났을 무렵 고백했다.
"나 사실 자기랑 같이 산 후로 한 번도 잘 잔다고 생각한 적 없어"
그 이야기가 나에겐 "너랑 같이 자기 싫어"로 들렸다. 남편도 참다 참다 방법을 찾으려 말한 것인데 겁을 먹은 나는 화가 났다.
"처음부터 잘 자는 부부가 어딨어 서로 어색하고 불편하지 그래도 싫다고 생각하면 계속 싫은 거야. 적응하려 노력해 봐"
남편을 다그치며 혼냈고 남편은 알겠다며 노력해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니 그날부터 내가 잠을 잘 수 없었다. 나 때문에 잠을 못 잔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상 남편이 잠들 때까지 최대한 거슬리지 않게 하려고 그 자세 그대로 버티다 보니 신경이 곤두서 내가 잠을 설치게 되었다. 잠결에 내가 자세를 바꾸면 옆에서 "으어~~" 싫다는 기색을 잠결에 내뱉기도 하고 어느 날은 "어~~~ 침대가 흔들린다~~"하면서 잠꼬대를 하곤 했다. 내가 감기에 걸려서 코라도 고는 날엔 자고 일어나면 남편은 소파로 자러 나갔다.
결혼 후에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남편이 계속 적응을 못 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이고 남편은 점점 예민해져 갔다. 그러다 남편은 결국 한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컴퓨터 방에 싱글 침대를 하나 놓고 잠만 분리할까? 자기 전까지는 같이 있다가 잠만 거기서 자는 거야"
남편 입장에서는 꽤 합리적인 제안이었지만 나는 그 제안이 상처가 되었다. 신혼에 각방이라니, 부부가 그래도 되는 걸까? 남편에게 실망스러웠다.
그 문제로 싸우기도 했고 나는 크게 상처를 받았고 남편은 남편대로 괴로웠다. 그러다가 남편이 어느 날 슈퍼싱글 2개를 슬라이딩 형식으로 붙였다 뗄 수 있는 침대 링크를 보내면서 이걸 구매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비싸게 준 신혼 침대를 버리고 또 몇백만 원짜리 침대를 사야 하는가 고민이 되어서 주변 결혼 선배들에게 조언을 얻었는데 너희 사이에 문제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제일 간단하지 않냐는 이야기에 나도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각방은 나도 용납할 수 없으니 이 침대로 한번 시도를 해보자 마음을 먹고 기존 칼킹침대는 시댁 남편방으로 옮겨놓고, 우리는 슬라이딩 침대를 구매했다.
남편과 내 침대 사이에는 약 30센티 정도에 사이가 있었고 자리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나는 더 이상 눈치 보느라 자세를 억지로 유지할 필요도 없이 행동의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우리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수시로 새벽에 깼다. 한 사람이 잠이 깨서 폰을 보다 보면 그 빛에 상대도 깨기도 하고 술을 먹거나 비염이 돋은 날은 코 고는 소리에 깨곤 했다.
내가 결국 각방을 선택하게 된 것은 남편이 잠에 깨는 날이 생기면 내가 이유가 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덜 피곤해서 몇 시간 못 자고 깨는 날도 있고 낮잠을 길게 자서 밤잠이 깊게 안 드는 날도 있고 그런 모든 상황들에 남편은 모든 이유를 나에게서 찾는 것 같았다
그 사이 몇 번의 검정 싸움이 오갔었고 그럼에도 각방을 하면 정상적인 결혼생활이 아닌 것 같아 오기를 부리던 나도 생각을 고쳐 먹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같이 잘 수록 사이가 나빠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잠을 제외하곤 우리 사이에 싸울 일이 없는데 같은 방을 쓴다는 게 우리에겐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슬라이디링 침대의 반쪽을 떼다 컴퓨터방으로 옮겨놓고 나는 시댁에 가져다 놨던 칼킹침대를 다시 가져왔다. (통 매트리가 혼자 자면 정말 꿀잠을 잘 수 있다) 패밀리 침대로 쓰려고 말이다. 그리고 슬라이딩 침대 반쪽을 다시 시댁 남편방에 갖다 놓는 세미 이사를 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각방을 시작했지만 나는 그때부터 잠자는 시간이 설레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기 전까지 같이 수다를 덜고 옆에 누워 책을 읽다가 잠이 오면 남편은 자기 방으로 이동했다. 더 이상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잠들고 싶을 때까지 책이든 유튜브든 인스타든 맘껏 하다가 잘 수 있었다. 하루에 선물 같은 자유시간을 만끽하는 기분.
전에는 졸리지 않아도 맞춰 자야 했는데 나는 자기 전에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면 잡생각이 많아져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유튜브로 말소리가 나오는 영상을 틀어놓고 말소리에 집중하고 있으면 까무룩 잠에 드는 게 버릇이었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그것도 제한당하니 잠들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었다. 혼자 자면서 그 방법을 다시 쓰니 잠에 드는 속도도 빠르고 무엇보다 남편이 나 때문에 잠을 못 잔다는 이야기에 코 골까 봐 혹은 뒤척거리다 깨울까 봐 나도 모르게 긴장하며 잤는데 어깨가 아팠었는데 따로 자고 나니 편안하게 잘 자서 어깨가 가벼워졌다.
각방으로 부부 사이에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날 이후로 서로 잠을 잘 자니 컨디션이 좋아져서 더 싸울 일이 없었다. 남편은 각방을 시작할 때 매일 아침 먼저 일어난 사람이 상대의 방에 와서 안아주는 걸로 약속을 해둬서 먼저 일어나면 서로의 방을 오가며 아침인사를 했다. 그리고 남편은 내 방에 들어올 때마다 괜스레 머리를 한번 만지고 들어오게 된다고 한다. 반 연애/반 결혼 같은 느낌으로 우리 사이에 긴장감이 생겼고 나는 일찍 잠에 드는 편이라 남편이 늦거나 하면 얼굴을 못 보고 자면 다음 날 아침에 후다닥 달려와 안고 어제 못한 이야기를 재잘거렸다. 우리 사이에 적당한 긴장감이 생겼다.
같은 방을 쓸 때는 서로 각자 시간이 없다 보니 오히려 낮에 붙어있지 않고 남편은 컴퓨터방에 나는 거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충했었다. 그러다 온전히 자기만의 공간이 생기고 밤을 보내고 나면 낮에 같이 영화를 보게 되거나 더 붙어있으려 해서 밀도 있게 우리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갖가지 이유로 새벽에 깨는 날이 있지만 서로의 탓을 하지 않고 또 하고 싶은 걸 하다 다시 잠들 수 있다. 이런 사소한 부분들이 우리 부부에게 전혀 다른 결혼생활이 재미를 주고 있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남편은 결혼 전까지 본가에 살았고 나는 10년 이상 혼자 자취를 했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각방을 쓰니까 잠은 잘자지만 기본 베이스가 가족과 함께여서 외롭다며 나에게 더 애정표현을 하고 틈만 나면 내 방으로 쪼르륵 달려와 대화를 나누자고 조른다. 하지만 나는 혼자 살던 버릇이 있어서 혼자력이 세지는지 남편한테 이제 자기 방으로 가줄래? 하는 순간이 많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밀당 아닌 밀당이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쁘지 않다. 남자는 멀어지면 잡고 싶어지고 여자는 멀어지면 이성적인 판단이 된다. 그런 기본 규칙이 각방으로 인해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각방에 대한 안 좋은 글도 많지만 둘에 패턴에 맞는 다면 각방이든 합방이든 둘의 규칙을 만들어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