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회사 앞 상가에서 외식을 했다.
남편과 뭘 먹을까 고민하며 상가를 한 바퀴 돌고 있는데
사다리에 올라가 간판 매무새를 고치고 있는 가게가 보였다.
새로 생긴 닭갈비 가게였다.
남편은 구미가 당겼는지 닭갈비 어떠냐고 물었다.
간판도 새로 한 반짝반짝한 가게, 살짝 안 쪽을 보니 한 테이블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40대 초반 부부가 하는 가게였다.
남자 사장님이 다가와 주문을 받고 여자 사장님이 반찬을 주시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셀프바 편하게 이용하시라고 했다. 반찬으로 나온 양배추 샐러드를 먹고 있는데 남자 사장님이 성큼성큼 다가오시더니
"사이다랑 콜라 중에 뭐 드실래요? 음료를 드리고 싶어서요"
표정도 굳었고 멘트도 어설프다.
여자사장님의 어색한 닭갈비 볶는 모습도 아직 어색해서 슬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맛이 없으면 어쩌지? 가게를 잘 못 골랐나 돈 아깝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찰 때쯤 ,
음료를 가져오신 남자 사장님이 쑥스러운 듯 말씀하셨다.
"저희가 오늘 오픈한 날이라서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조금 미안해졌다.
첫날이라 설레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가게를 여셨겠지.
어색하고 서툴지만 우리를 편안하게 해 주시려 말 한마디 더 건네어보려 하신 거겠지.
가게에 들어온 손님이 반갑고 고마워 음료수 하나라도 주고 싶었던 마음이었겠지.
가게를 준비하며 고심해서 준비한 닭갈비를 나는 서툴어 보이니 맛이 없을 거라 단정 지어버렸다.
닭갈비는 걱정과 다르게 아주 맛있었고 나오면서 어땠냐고 묻는 질문에 아주 맛있었다고 응원의 마음을 담아 대답했다.
우리는 서투름에 관대하지 않은 사회를 살고 있다. 신입사원을 뽑으면서 경력직만큼 하길 원하는 것처럼 사회는 점점 각박해지고 자기 자신이 것이라면 시간/돈/경험까지도 피해 입고 싶지 않은, 누가 보면 야무지고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이기적인 세상에 나도 힘을 보태는 것 같다.
오픈한 가게에 후기도 없는데 사장님마저 서툴러 보여서 나는 내 시간/돈/기분을 뺏길까 봐 방어적이었다.
서투름이란 무조건 찾아오는 조건이다. 무엇을 잘한다는 기준이 생기기 위해선 서투르고 어설픈 비교대상이 필요하다. 첫 운전의 어설픔은 당연하고 서투름을 조금씩 벗어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된다.
처음은 그렇게 어설프고 서툴러야 성장이 맛있어진다.
서툴렀기에 크게 실수한 경험, 그 안에서 나를 따스하게 감싸주고 내일처럼 해결해 준 선배의 고마움은 회사원 15년 차인 나에게 아직도 또렷이 남아있다. 서툴러봤기에 실수한 신입사원이 심정이 얼마나 불편하고 속상할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선배가 되었다.
처음부터 능숙한 사람은 결코 없다. 있다 하면 그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사람은 실수와 경험으로부터 성장한다. 서투름은 사람을 거만하지 않게 점검하게 하고 잘하고 싶어서 애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경험을 준다.
나이와 위치가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어설프고 서툴러 보이는 것에 두려움을 갖게 된다. 나의 체면이 깎일까 봐 새로운 일에 선 듯 도전하기가 두려워진다.
이 나이에 망신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그리고 사회적 위치만큼 무엇이든 능숙해야 된다는 강박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건 꽤나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도전할 수 있는 어른은 정말 멋있다.
가끔 회사에서 스포츠행사나 방탈출 등 요즘 세대에 유행하는 것을 추진할 때 40대 이상 선배들 중 일부는 행사는 참석하지 않고 식사만 참석하겠다고는 한다.
해 본 적도 없고 낯설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다른 일부는 권위를 내려놓고 참석하셔서 꽈당 넘어지시기도 하고 맥을 못 추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럴 때 후배 사원들은 평소 어렵게 느껴졌던 선배가 친근하게 느껴지고 그 기회로 사이가 돈독해지곤 한다. 후배 사원들은 더 이상 어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선배에게 도움을 준다. 관계가 상하에서 수평이 되는 순간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의 서투름을 보듬어주는 어른과 어른의 서투름에 친근감을 느끼며 다가서는 젊은 세대, 그렇게 어우러지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서투름에 가치는 꽤 크고 어마어마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