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마법 같은 순간이 온다고 한다.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일들이 어느 날 불쑥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처럼 내 품에 던져지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나는 근시였다. 자꾸만 앞머리가 아프고, 이마 쪽으로 인상이 찡그려지고, 뭔가 선명하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엄마 손에 이끌려 병원에서 시력검사를 하니 이미 꽤 진행된 근시였다.
안경을 끼자 느닷없이 흐릿한 세상이 선명해졌다. 선명하지만 어지러운 시야에 겨우 적응을 하고, 육 개월 후 검사를 하니 아이러니하게도 눈은 더 나빠져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안경 도수를 올리고 다시 불편한 적응을 해야 했다. 그렇게 올린 도수에 익숙해질 무렵 검사를 하면 영락없이 눈은 더 나빠져 있었고, 자동적으로 안경 도수를 올리는 일이 십 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눈은 성실하게 나빠졌고 렌즈 디옵터의 숫자는 끊임없이 올라갔다.
대체 언제까지 눈이 나빠질 것인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안구의 길이가 길어져 근시가 된다는데, 내 안구의 길이는 얼마만큼 더 길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렌즈가 두꺼워지는 딱 그만큼의 자신감이 사라져 갔다. 안경 너머의 세상은 당연히 일정 부분 왜곡된 세상일 것이므로 내가 가진 삐딱한 시선은 그렇게 자라났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근시인 친구들이 제아무리 많다 해도 나는 내가 불행하게 느껴졌다. 억울하기도 했다.
그러다 마침내 맨눈으로는 내 얼굴의 어느 부분도 보이지 않아, 그것이 눈인지 코인지 입인지 도저히 구분하지 못하게 됐을 때 나는 포기하고 절망했다. 거울을 제아무리 가까이 대도 나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흐릿한 경계의 모습으로 그것이 얼굴 같기는 했다.
말이 되는가?
나는 고도근시의 젊은 여자애였으므로 몸 쓰는 일에는 당연히 소극적이었고, 현실의 로맨스에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나와는 다르게 진솔하고 당당한 시력 좋은 여자아이들의 천진한 몸짓을 부러워했다. 아름답고도 비현실적인 신혼을 기대했는데, 아침부터 팽팽 도는 안경을 쓴 채는 분위기 꽝일 것이라고 단정했다. 참으로 못나고 우스운 예민함이지만 극복은 어려웠다.
그렇게 흘러가던 이십 대 후반 어느 날, 놀랍게도 러시아의 어느 안과의사가 레이저 칼로 근시를 교정하는 수술을 상용화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첨단의 수술법이 상세하게 소개되었을 때 나는 그 의사가 미래에서 온 마법의 레이저 칼을 휘두르는 기사처럼 느껴졌다.
안경이나 렌즈를 끼지 않고 내 얼굴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꿈같은 일이었다.
TV나 책을 보다가도 자연스레 스르르 잠들 수 있고 아침에 눈을 뜨면 자리에 누워서도 시계의 시침과 분침을 확인할 수 있다. 한밤중 잠에서 깨어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 갈 때도 안경을 찾아 더듬거릴 필요가 없을뿐더러 목욕탕이나 수영장, 여행지 이 세상 어디에서도 더 이상 렌즈와 안경을 품에 껴안고 씨름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신세계인데, 이 수술을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고도근시의 선조들이 가엾게 여겨질 지경이었다. 비로소 갇혀버린 세상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났다.
우리나라 개최 월드컵 첫 경기 날, 나는 드디어 근시교정술을 받았다. 폴란드와의 경기 첫 승리가 축구팬들에게 마법의 순간으로 다가올 때 내게도 또 다른 마법의 순간이 허락되었다. 그토록 걱정하며 기다렸던 수술은 허무할 만큼 간단했고, 나는 수술 첫날 바로 내 얼굴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성장기 내내 괴롭혀 오던 두통도 사라졌으며, 냉소의 시선은 부드러워져, 세상은 파스텔의 색조로 환해지기 시작했다. 내게도 천진한 몸짓이 시작된 것이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마법과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타인의 눈에는 별 대수로울 것 없는 사건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삶을 바꾸어 놓을 만한 판타지의 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찰칵하고 스위치가 켜지고 무수한 전등이 머릿속에 반짝이는 터닝 포인트의 순간은 생의 가장 특별한 순간이다. 살다 보면 꼭 마법은 온다.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