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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Jul 25. 2022

'바쁘다'는  사랑한다는 말

손바닥 소설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엄마는 세상을 떴다. 위암 진단을 받자마자 가능성이 반반인 수술을 했고 겨우 회복하는가 싶더니 제대로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상태가 확확 나빠져 허둥지둥 눈을 감아버렸다. 속이 좋지 않다며 서울 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온 지 4개월이 지나지 않아 그렇게 되었다. 엄마는 일흔아홉이었고 그녀의 유일한 피붙이였던 나는 너무 황당해서 반쯤은 넋이 나가 일을 치렀다.     


엄마의 죽음이 아니라도 1년 전부터 내 인생은 좀 허탈했다. 십수년을 별 일없이 다니던 잡지사의 잡지가 폐간을 했고, 별거 비슷하게 지냈던 남편이 새 인생을 찾겠다고 혼자 뉴질랜드로 날랐으며, 그나마 의지가지였던 아들은 해외지사로 파견되었다. 어차피 직장도 그만둘 때가 되었고, 남편이야 각자 사는 인생이었다. 그리고 아들도 이제 자신의 삶이 있는 것이니 따지고 보면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나는 혼자가 되었고 어디론가 떠밀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럭저럭 엄마의 사후절차를 끝내자 살던 집이 남았다. 오래된 시골집이 팔릴리도 없겠고 그렇다고 마냥 비워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일정도 정하지 않고 간단한 짐을 챙겨 이곳으로 왔다.

무엇보다 나는 이제 바쁘지 않았다.      


사년만이던가...

가끔 엄마가 나를 보러 서울로 오는 쪽이었으므로 시간이 그렇게 되었다.

참 변하지도 않는 동네, 느린 사람들 그리고 풀, 나무, 곡식, 산, 들판 그런 것들이 화석처럼 박혀 있는 곳. 언제부턴가 나는 이곳이 너무 갑갑해서 이틀을 견뎌내질 못했다.      


엄마는 늦봄에 가셨는데 어느새 여름이었다. 푸른색 철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마당이 엄마의 부엌이 그리고 엄마의 마루가 익숙하게 다가섰다. 나는 아무렇게나 마루 한쪽에 트렁크를 밀어 넣고 철퍼덕 누워 눈을 감았다. 등이 마룻바닥에 닿자 몸의 열기가 쏴악 사라지더니 시원했다.


그리고 내 곁을 감싸고 돌기 시작하는 고요함이 어쩐지 싫지 않았다. 예전에는 두려움으로 느껴졌던 그 고약한 고요함이 휴식처럼 여겨졌다. 나도 늙나 보았다.     

가방도 열기 귀찮아 방으로 들어가 엄마의 옷장을 열었다. 까슬한 몸빼바지 하나를 걸치고 방안을 살펴보았다. 엄마는 자신이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던 걸까? 깔끔한 성격이기는 했지만 방은 지나치게 깨끗했다.




갑자기 배가 고파져 부엌으로 가 먼저 밥솥에 밥을 안쳤다.     

“엄마 뭐해?”하고 내가 가끔 전화하면 언제나 엄마는 “별일 없지? 엄마 바쁘다. 끊자.”라고 했다.

나는 맨날 바쁘다고 해주는 엄마가 편했다. 니 인생 내 인생 같이 묶어 부담 주지 않아서 너무 고마웠다. 어쩌다 혼자 지내면서 뭐가 그리 바쁘냐고 물으면 ‘시골 살림이 원래 그래..’

그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거의 엄마를 찾지 않았다. 엄마는 바쁘니까라고 생각했다.     


어느새 밥이 지어지고, 냉장고를 열어 엄마가 만들어 놓은 묵은 깻잎 김치를 꺼내 천천히 밥 한 공기를 비웠다.

그러다 보니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무슨 귀중한 물건이라고 이쁜 통에 소중히 담아놓은 엄마의 커피믹스를 꺼내 커피를 한잔 탔다. 마루에 앉아 믹스커피를 마시다가 찔끔찔끔 훌쩍였다. 그렇게 싫어했던 이곳에 와서 혼자 울고 있다니 내가 너무 가여운 거 같았다.      


커피잔을 비우고 일어서서 엄마의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해질녘이라 그런가 아니면 내가 감상적이라 그런가 그렇게 질색했던 그녀의 공간이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컬러도 알록달록 디자인도 제각각 촌스러워, 보는 내내 스트레스로 작용했던 엄마의 가구와 살림살이들이 어쩐지 느낌있었다.

빈티지스러워 그런가?      


그러다 마루 벽에 걸린 달력에 시선이 머물렀다. 뭔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달력을 내려 바닥에 놓고 천천히 넘겨보았다. 된장담기, 고추장만들기를 시작으로 매실청, 깻잎김치, 미숫가루, 열무김치, 오이소박이, 오미자청, 사골, 파절임, 마늘장아찌, 김장에 이르기까지 달력에는 한 해의 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먹을 사람도 없는데 왜 굳이 힘들게 그런 걸 하냐고 내내 싫은 소리를 해댔던 엄마의 저장 음식들이었다. 나는 ‘진짜 못말려’ 하면서 혼자 중얼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열두장 달력의 아래쪽에 빠짐없이 ‘바쁘다’, ‘바쁜 게 최고다’, ‘바빠야 한다.’라는 말들이 도돌이표처럼 쓰여있었다.

바쁘다가 무슨 인생슬로건인가? 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엄마의 달력을 한장 한장 찍기 시작했다. 엄마가 있었던 1월부터 존재하지 않을 12월까지. 찰칵찰칵 셔터 소리가 귀에 꽂혔다. 집은 너무 적막했다.      


보고 싶다. 바쁘다. 외롭다. 바쁘다. 뭐하니? 바쁘다. 두렵다. 바쁘다. 아프다. 바쁘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바쁘다는 한 줄 시로 끊임없이 내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를 벗어나 너는 너의 길을 가기를...  그래서 나는 바빠야 한다고.’

나는 이 시점에서 소리 내어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의 ‘바쁘다’는 사랑한다는 말이 너무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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