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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Jul 31. 2020

MY SIXTY

                                       


어릴 때부터 기대하던 나이들이 있었다. 십 대에는 스물일곱을 주제가처럼 부르고 다녔다. ‘스물일곱만 되어 봐라. 나는 완성될 거다. 무조건 원숙하고, 분위기 있는 여자가 되어 있을 거다.’ 그때 스물일곱은 꿈의 나이였다. 젊음의 정점을 찍는 시기일 거 같았고, 그쯤 되면 자랄 만큼 자라나 완벽한 여자 어른으로 성장해 있을 거 같았다. 주문처럼 외고 다니던 스물일곱이 되자 거짓말처럼 내게도 많은 변화들이 있었는데, 외면적으로는 정말 괜찮은 여자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원래 이십 대는 길고 긴 시간이므로, 많은 일들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알싸한 경험들은 그럴싸한 색채를 만들어 성급하게 나를 칠해가고 있었다. 아이티를 벗었고, 끈질기게 괴롭혔던 수많은 단점들을 급기야 순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그 단점들을 제치고 나온 작고 가녀린 장점의 씨앗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점의 스물일곱은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그 빼꼼한 시절이 지나자 나는 아이 티만 벗었을 뿐 여전히 유치 찬란한 자신과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늘 그렇듯 실체적인 목표와는 거리가 먼 감상적인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갖고 싶던 장면이 있었다. 완성해야 할 나만의 비주얼이 있었던 셈이다. 가장 마음에 안 드는 포인트는 Let it be의 세련된 마음을 소유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가질 수 없는 타인의 마음을 갖지 못해 안달복달 가관이었다. 상상했던 여자의 느낌에 비해 너무나 얄팍했고 가벼웠다. 포기하기엔 다소 일렀던 나는 마흔다섯을 데드라인으로 정해 기대했다. 서른도 훌쩍 넘긴 나이이며, 중년의 여자일 것이므로 그때쯤이면 마침내 기다릴 줄 알고 고요히 내버려 둘 줄도 아는 담백한 여자가 되어 있겠거니 하는 희망을 품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마흔다섯이 되었을 때는 기가 막혔다. 사느라 너무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은 나는 마흔다섯의 나를 그렇게 기다렸던가 하는 마음마저 잃어버린 상태였다. 욕심은 늘었고, 정체성은 초등학생의 그것처럼 오락가락 정돈되지 않았다.     


그 마음이 그렇게 가지기 어려운 것인지 몰랐다.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것이 그렇게 높은 경지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거의 포기했었는데, 육십을 향하고 있는 지금 놀랍게도 작은 희망의 불씨가 보이기 시작한다. 늙어가지만 아름답고 여유로워지는 나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원하던 워너비의 모습이 언뜻언뜻 비치기도 한다. 자세가 조금씩 구부정해지는 것, 팔다리가 경직되는 것, 얼굴의 윤곽이 무뎌지는 것, 중력에 따라 몸의 라인이 자꾸만 주저앉는 것, 손마디가 굵어지는 것 등 수많은 노화의 징후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이상하게도 그것들은 하나도 거슬리지 않는다. 조바심 많은 성격인데도 유독 이 부분에는 너그러운 내가 신기하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토록 고대하던 것, 평생 가질 수 없을 것 같던 그 마음을 마침내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일 수도 있다. 고대하던 것은 늘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


이제 나는 초조하지만 기다릴 줄 안다. 쓰리지만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있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바라보이는 숨겨진 마음 한 자락도 지니고 있다. 신통하게도 아등바등 않고도 뭔가를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니 굳이 늙는 것을 싫어만 할 이유가 있나? 그럴 바에는 차라리 오늘 하루 차분하게 늙어 보기로 한다. 육십이 되면 Let it be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대로 두고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는 세련된 정서의 여자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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