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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Aug 01. 2020

내일은 없다

                    


38년생 호랑이띠, 82세인 엄마는 오늘도 자이브를 춘다. 자이브만 추는 것이 아니라 합창도 하고 일본어도 배운다. 엄마는 20여 년 전 아빠를 보내고 혼자되었다. 완전히 늙지 않은 나이에 갑자기 결혼생활이 끝나버리고 혼자가 된 것이다. 나는 아빠 없이 보내게 될 엄마의 시간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아빠는 떠나면서 자식들에게 그해 맞이하게 될 예순 번째 엄마의 생일을 부탁했다. 쓸쓸하지 않게 해 달라고, 엄마와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가을이 되어 엄마가 생일을 맞자 우리는 작고 따뜻한 모임을 하면서도 언뜻언뜻 엄마의 눈치를 보았다.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쓸쓸하지나 않을까, 우울 하지나 않을까.... 무엇보다 앞으로 엄마가 제대로 설 수 있을까 염려되는 마음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엄마를 제대로 몰랐다. 워낙 개성 넘치고 발랄했던 아빠에 묻혀 엄마는 건조하고 이기적인 성격의 그냥 엄마로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결혼생활 내내 엄마는 아빠에게 의존적이었다. 아빠는 엄마를 늘 옆에서 챙겼고 따라서 엄마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홀로 보내게 될 엄마의 시간이 염려되었다.

하지만 나의 판단은 틀렸다. 엄마는 먼저 간 아빠를 그리워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읽고 싶던 소설책도 실컷 읽고, 사이클도 시작하고, 산에도 다니면서 하고 싶던 일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놀랍게 춤도 추기 시작했다. 엄마가 춤을 추리라는 것은 상상해 보지 않았다. 우리가 어렸을 때 엄마는 취미로 붓글씨를 썼다. 그런데 엄마는 더 이상 그런 답답한 취미는 갖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 건 지겹다고, 몸을 움직이겠다고 선언했는데, 우리는 어이없어하면서도 손뼉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엄마는 유난히 붙임성 없는 자신의 성격에 늘 자신 없어했고, 그로 인해 대인관계를 힘들어했다. 하지만 용기내기로 결심했다며, 댄스교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시작한 엄마의 춤 인생도 어느덧 십수 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어설펐지만 엄마는 차츰차츰 자신의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해 나갔다.  외모로만 보면 그냥 보통의 80대 할머니일 뿐이지만 엄마와 이야기해 보면 알 수 있다. 엄마는 노년의 굴레에 갇혀 있지 않다. 늘 깨어있고 지금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가끔씩 고민을 말하면 들려주는 해결책은 명료하고 구태의연하지 않다. 어떨 땐 나보다 훨씬 진보적일 때도 있다. 엄마는 벌써 오래전부터 내게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엄마의 삶이 멋있어 보인다.




 오늘을 사는 미운 오리 새끼               

 

중학교 때 내 별명은 미운 오리 새끼였다. 오리주둥이처럼 약간 튀어나온 입 때문인지 아니면 좀 삐져나가는 행동 때문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아이들은 나를 오리 새끼라고 불렀다. 그런데 나는 그 별명이 과히 싫지 않았다. 백조로의 변신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미운 오리새 끼는 지금은 좀 외롭고 힘들어도, 참고 견디면 찬란한 백조로의 등극이 예정되어 있지 않은가! 완벽한 해피엔딩의 삶이다. 그래서 별명이 도리어 위로가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백조로의 변신은 개뿔.....  현실은 절대로 동화가 될 수는 없다. 그저 허덕허덕 주어진 시간을 헤엄쳐 갈 뿐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얼마 나아가지도 못했다. 나도 나름대로 내일을 위해 애썼지만 화려한 변신은 없었다. 실패를 거듭하고, 좌절을 견뎠지만, 때로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씩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는 저축된 예금을 야금야금 빼먹듯이, 시간과 열정을 낭비해 왔던 지난날이 후회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잘못 배웠다. 학교가 부모가 자꾸 미래만을 생각하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살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이유는 수백 가지도 넘었다. 지금은 학생이니까, 지금은 젊으니까, 지금은 아이가 어리니까, 지금은 경제적 여력이 없으니까, 지금은 상황이 안되니까..... 그래서 매번 기다리고, 미루고, 내 앞의 것들은 사라졌다. 나도 최근에야 더 이상 내일은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교육의 힘은 위대하다. 저당 잡힌 오늘은 내일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이 행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어리석게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나마 똑똑한 요즘 아이들은 이미 깨닫고 다들 오늘을 살고 있으니 다행이다. 엄마는 언제 이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을까? 아빠가 떠나고 나니 깨달아진 것일까? 어쨌든 내일로 오늘을 대신하지 않는 엄마가 나보다 멋있다. 물론 나이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나도 내일은 조금만 생각하기로 한다. 오늘에 집중하고, 지금에 푹 빠져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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