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말로 표현해야 낫는 병
" 하루 종일 내가 엉덩이 땅에 붙이고 앉아 있을 시간이 있는 줄 알아? 일주일 동안 쌓인 빨래 다하고, 봄이라 베란다가 눈에 거슬려서 물청소했지, 애들 밥 세 끼에 간식 해먹이고, 코르나 때문에 나가지 못하니까 집이 난장판이야, 치우고 나면 또 치워야 되고, 잠깐 숨 돌리려고 하면 울고. 그러고 나면 벌써 저녁이야! 숨 돌릴 틈도 없이 당신 칼퇴근하잖아 “ 그러니까 제발 좀. 여기까지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듣고 ” 당신 오늘 힘들었지? 쉬어! 내가 애들이랑 저녁 알아서 먹을게. 뭐부터 해야 하지? “ 이렇게 대답해 주길 바라지만 현실은 늘 빗나간다. 속으로 ‘ 그걸 내 입으로 꼭 말해야 알아듣니? 이 인간아! ’ 현실 남편은 말한다. ” 나도 피곤해, 피곤해 죽겠다고. 그러니까 어떻게 하라고?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고? 말을 해야 알아듣지. “ 이쯤 되면 다시 언성이 높아진다. ” 알았어! 다시는 당신한테 뭐해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일하다 죽어도 내가 죽을 거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 방문을 꽝 닫고 들어오는데 애들이 매달리고 난리다. 뿌리치고 방에 앉아 화를 가라앉히면서 생각해 보니, 애당초 이렇게 말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후회가 된다. 정작 말하고 싶었던 말은 "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었으면 좋겠어. 몸이 으슬 으슬한 게 몸살 기운이 있어. 당신이 애들이랑 저녁 해결해 주면 좋겠어 " 요걸 말하고 싶었는데 말하지 못했다. 몸과 마음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남편에게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지 명료하게 구체적으로 말했다면 안 들어줄 남편이 아닌데 말이다. 하루 종일 애들이랑 힘들었다는 마음을 알아주길 비랬는데 " 그러니까 어쩌라고!" “ 말을 해야 알지!” 언성을 높이니까 순간 울컥했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이런 식의 표현은 그래서 뭘 원하는지 알아듣기도 힘들고, 상대가 내 말을 소중하게 여기기도 어렵다.
지금은 많이 자유로워졌지만 왜 그렇게 말하기가 어려웠을까. 자기표현은 현저하게 세대에 차이가 많은 영역이다. " 몸이 안 좋아서 그러는데 이번 주말은 애들이랑 나가서 밥 먹고 놀다 와 줄래? 혼자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서 그래. 설거지해줄 수 있어? 이번 생일에 받고 싶은 선물이 있어. 꼭 갖고 싶어. 톡으로 사진 보낼게, 오늘은 컨디션이 엉망이라. 다음에 잠자리해도 괜찮겠어?" 요즘 세대들은 솔직하게 잘 말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대화의 목적은 상대에게 뭘 원하는지 그걸 말하고, 상대가 원하는 걸 듣는 과정이다. 대체로 원하는 건 말하지 않고 상대가 알아주길 바란다. 이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고 불만이 생긴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원하는 것을 말해야 하는 이유이다. 뭘 원하는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문제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는 데 있다. 원하는 걸 표현하기도 힘들지만 거절하기는 더 어렵다. 이 글을 읽는 동안 특히 누구와의 관계에서 어떤 걸 말하기 힘든지 자세히 살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그 안에 자신이 돌보아야 할 좌절된 욕구가 숨겨져 있다. 원하는 걸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걸 상대에게 말로 표현하기 두렵다. “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 남편은 자주 이렇게 물었다. 특히 여성은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회에서 살아왔다. 수백 년 동안 여성은 다른 사람을 돌보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참고 억제하고 무시하면서 살아왔다. 지금 세대는 자기표현에 좀 더 자유롭다 하지만 부모님 세대는 헌신, 희생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도록 사회화되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무시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당연히 여자라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화가 많은 건 억눌리고 돌보아지지 않은 욕구가 많기 때문이다. 억눌린 자신의 욕구 표현이 아이에게 쏟아지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 어떻게 하면 원하는 걸 줄 수 있는지 말해줄 때 원하는 방식으로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상대에 대한 감사가 우러나온다.
욕구는 삶 자체에서 나오는 에너지이며 내면의 긍정적인 힘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매 순간 공기처럼 필요하고 순간순간을 생동감 있게 해주는 에너지이다. 자신이 원하는 욕구를 인식하고 원하는 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표정이 달라진다. 한참 시험공부에 열중해야 할 아이가 공부하다 말고 이렇게 말한다. " 아! 오늘 날씨에 에버랜드 가면 정말 좋을 텐데. 그때 탔던 자 이롭 정말 재미있었는데... " 한다면 뭐라고 엄마들이 대답할까? 대부분 " 공부하기 싫으니까 딴생각하고 있어! 시끄러워 얼른 들어가서 공부해" 한다. 이때 잠깐 멈추고 아이와 연결하면서 " 쟤가 원하는 게 뭘까?" 머물러 본다. " 공부하려니까 답답하고 힘들지? 화창한 날씨에 시험공부하고 있으니까 놀고 싶어서 그래? 친구들이랑 놀러 가고 싶구나? 잠깐 쉬고 공부할까?” 아이들에게 재미, 놀이의 욕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놀게 하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게 하고 함께 이야기 나눈다면 에너지 전환이 된다. 말은 에너지를 담고 전달된다. 말로 표현할 때 원하는 것이 훨씬 더 명료하게 전해지고 소중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힘들 때 지칠 때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것을 말로 표현하면 위로받고 마음으로 힘을 얻은 느낌이 든다. 충분히 자기표현을 하도록 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