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고 하는데 정말 괜찮아?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말로 표현해야 낫는 병

by 남정하

우리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실제 감정과 남들에게 드러내는 감정은 다르다. 실직을 당했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어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 괜찮아 "라고 말한다. 괜찮다고 말할 때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말하는 걸까? 괜찮지 않은 게 당연한 상황인데 괜찮다고 말하는 건 자신의 감정이 들킬까 두려워서 일까? 자신이 나약한 사람이란 게 드러날까 봐 부끄러워서 일까? 모두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과연 정말 괜찮은지 묻고 싶다.

결혼하기 전 제약회사에 근무할 때 일이다. 첫 여대졸 사원으로 입사한 나는 회사 규정에 사례가 없던 사람이었다. 결혼이 그랬고 출산이 그랬고 진급문제가 그랬다. 여사원이 진급이 된 케이스는 이전에 없었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이 모두 승진한 날, 승진에서 누락되었다. 마음으로 준비한 결과였지만 막상 발표가 나니 사람들이 다들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나와 친분 있던 회사 지인들과 상사들이 내가 어떤지 묻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발표가 나고 나서 자리를 일어나 조용히 옥상으로 올라갔다. 빌딩 전체를 돌리는 공조기 돌아가는 소리가 윙윙 들렸고 옥상은 황량한 콘크리트 공간이었다. 아무에게도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처음 가본 곳이다. 빌딩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누락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분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승진을 앞두고 누락될 거라 예상했지만 발표가 나는 순간 무기력하고 수치심이 밀려왔다. 자신의 의지와 감정은 그만큼 달랐다. 나와 같은 입장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담배 피우러 옥상에 올라왔던 동기가 나를 봤다. 천천히 다가오는 걸 본 순간 서둘러 감정을 추스르고 내려갈 준비를 했다. 동기는 나에게 괜찮은지 물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괜찮다고 대답하고 계단을 내려왔다. 괜찮냐고 물어봐준 그 말이 참고 있던 감정을 건드렸나 보다. 고개를 돌리면서 계단을 내려오는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러면서 나에게 물었다. " 괜찮다고 말하지만 정말 괜찮은 거니?"






얼핏 보기에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솔직하게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거다.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라서 못한다. 충분히 누군가 들어주고 다독다독 위로받은 경험이 없어서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모른다. 책에서는 스스로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자존감 낮은 사람들의 특징이라 하는데 그런 평가를 들을 때 답답하다. 속마음을 말하고 싶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아 한마디도 이어갈 수 없다. 내 감정과 욕구를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하고 싶지만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 몰라 힘이 든다.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데는 저마다 결정적인 사건에 대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라면서, 혹은 생활하면서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는데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 상처가 됐다면 이는 오래된 학습의 결과이다. 비폭력대화에서는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지 못한 대가는 스스로가 고스란히 받게 된다고 말한다. 결국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해서 상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위로받을 기회를 놓친다. 홀로 힘든 시간을 견뎌 이겨내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게 되고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못한 채 외롭게 살아가게 된다.






내가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없다. 괜찮다고 하는데 혹시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하는 게 아닌지 물어본다면 도와주려고 하는 말에 화를 낼지 모른다. 솔직한 표현은 상대방에게 나의 감정과 욕구를 말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기회다. 내가 그때 어땠는지 마음에 살아있는 부정적인 생각, 감정, 판단 들을 쏟아내고 나면 조금씩 괜찮아진다. 괜찮아지려면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기대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 때문에 힘든지 뻔히 알면서도 머리가 알고 있는 것과 마음이 원하는 감정표현은 차이가 있다. 그 일에 뻔히 예상했던 일이지만 얼마나 나를 좌절스럽게 하는지, 승진에 누락된 나를 훔쳐보는 사람들 시선을 견디기 힘든지, 규정에 없었다 하더라도 뻔히 뽑아놓고 배려하지 않는 회사에 대한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고 있음을 털어놓았다면. 모든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었다면 승진 발표 후 정말 아무렇지 않게 당당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안 괜찮은데 괜찮은 척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부끄러워하면서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그게 마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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