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덜 아프다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말해야 낫는 병

by 남정하


인생을 잘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할 일을 다해 후회 없다는 60대 어머니 이야기다. 결혼하자마자 시부모님 모시고 살았다. 결혼해서 시아버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아버님은 큰 며느리인 자신을 앉혀놓고 " 네가 제일이다. 네가 우리 집에 큰 며느리로 들어와서 기쁘다. 제일 의지가 된다 "면서 자주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착한 큰 며느리에게 시동생, 동서지간 갈등이 생기면 먼저 감싸줘야 한다고 늘 당부했다. 그 시절에는 시아버님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큰 며느리를 아끼던 시아버지는 시어머니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돌아가셨다. 약속은 꼭 지키는 성격이었다. 20년 동안 병시중까지 정성껏 해서 보내 드린 후에야 겨우 여유가 생겼다. 여행 한번 다녀오지 못하고 시어머님 수발을 들었다. 용기를 내서 여행을 다녀오려고 했지만 시어머님은 요지부동이었다. 큰아들네서 움직이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누구도 나서서 어머님을 설득하지 않고 서로 눈치만 볼뿐 선뜻 모셔가려고 하지 않았다. 큰 며느리 혼자 시어머님 병간호를 당연한 책임과 의무로 여기면서 살아왔다. 그 세월을 떠올리면 슬퍼진다. 다른 사람들 모두 편안하면 될 일이라 생각하면서 혼자 견뎌낸 일은 잘한 일이라 생각해 왔다. 아마 갈등이 있어서 시어머님을 잘 보내 드리지 못했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 긴 세월을 어떻게 참고 견뎠는지 아득히 옛일 같다. 그 덕분에 가족들에게 감사를 받고 산다. 시댁 식구들은 마음이 있다고 선뜻할 수 없는 일을 했다고 고마워한다. 자신도 힘들었지만 할 책임을 다한 홀가분함을 느끼며 잘 살았다고 생각해왔다. 한데 시간이 갈수록 억울하다. 분명 잘 살아왔다는 자부심과 뿌듯함이 있는데 왠지 화가 나고 허무하다. 가족들에게 힘들다 말 한마디 못하고 혼자 애쓰느라 꾹꾹 눌렀던 감정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아내, 며느리, 형수 도리 다하느라 산 세월이 바보같이 느껴진다. 가족들을 위해 사느라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후회가 생긴다.






이런저런 교육을 받으면서 억울함의 실체를 알게 됐다. 큰 며느리 역할하며 사느라 자신을 돌볼 줄 몰랐다. 뒤늦게 한마디 말도 못 하고 꾹꾹 참아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우성치는 소리였다. 듣고도 못 들은 척하고 가족들을 돌보는데 온 힘을 쏟은 자신에게 호소하는 감정의 소리였다. 시댁 식구들 건사하면서 힘든 감정이 생기면 곧바로 자비심을 일으키는 수행을 했다. 불교수행으로 힘들지 않고 당연히 해야 할 도리를 잘 수행했다고 자부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감정적으로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 평안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정작 자신에게는 폭력을 휘둘렀다고 생각하니 온통 혼란스럽다.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자부해 왔는데 과연 잘 산다는 의미가 뭔지 근본이 흔들려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가족들이 형수님 정말 감사해요 하는 말을 듣는 게 무슨 소용 일까 싶기도 하다. 그러다 어느 날 시아버님이 하신 생각이 떠올랐다. " 큰 며느리가 제일 착하다. 가족들 관계는 너한테 달렸다. 널 믿는다 " 하신 말을 좋아하면서 믿었던 자신이 바보같이 여겨진다. " 아! 시아버님이 착한 며느리가 되라고 칭찬으로 조종하셨을지 몰라.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시아버님 기대를 맞추려고 살았구나 " 생각하니 자신이 초라하고 바보같이 느껴진다. 불법을 믿는 불자이니 생각으로라도 업을 지어서는 안 된다고 그런 생각 자체를 죄책감으로 여겨졌다. 큰 며느리 책임을 다하고 잘 살아왔노라는 자부심도 잘못된 상을 붙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세월을 보내서 그런지 자식들한테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간섭하지 않으려 애쓴다. 칭찬이 얼마나 독이 될 수 있는지 몸으로 겪었다. 자녀가 부모 기대를 맞추고 사느라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한다면 어떤 결과가 이어지는지 잘 안다. 시부모님은 큰 며느리의 뒤늦은 후회에 뭐라고 말하실까? 며느리가 아니라 딸이라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고 홀로 독립적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면서 건강하게 노년을 살아가고 있다.






요즘도 부모 뜻을 거스르거나 부모의 기대에 반하는 행동을 해 본 적이 없는 자녀를 부모들이 원한다. 부모는 자녀가 부모의 기대에 맞추도록 원하는 게 아니라 자녀가 자기 자신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어야 한다. 코르나 발병 후 세계는 급속도로 불확실한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고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의 시대를 맞고 있다. 정답이 없는 시대, 불확실한 시대에 부모 자신들의 삶도 예측할 수 없다. 코르나 이전 삶의 해법과 방식으로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세상은 코르나 이전 삶, 코르나 이후 삶으로 구별된다. 다시는 코르나 이전 삶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들 한다. 다른 사람이 찾은 답이 내 삶의 답이 될 수 없다. 각자 자신의 삶에 답을 찾아가야 한다. 자기 인생의 답을 찾아 긴 여정을 해 나가야 할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다. 부모가 줄 수 없다. 그래서 부모는 부모의 기대를 자녀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 기질이 약한 자녀들은 강요하지 않았는데 부모의 기대를 자신의 신념으로 삼고 부모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정답 없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기대를 자신의 신념으로 삼고 살아간다면 매 순간 혼란스러울 수 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걸 믿고 살아가도록 지원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 기대, 이론 이런 게 중요하지 않다. 시대가 변하면서 부모교육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들은 아제 아이 자신이 존재 자체로 갖고 있는 자질과 질문, 호기심, 느낌,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정성을 쏟아야 한다. 바라보는 관점이 전체에서 한 개인이 아니라 자녀라는 우주 속에서 가능성과 직업, 잘하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자기표현과 거절에 대한 문제를 새롭게 바라봐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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