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말해야 낫는 병
둘째가 대학을 들어가 1학년을 마치고 군 입대를 했다. 남편이랑 의논하더니 어차피 다녀와야 할 거라면 얼른 의무를 마치고 공부하는 게 마음 편하다는 결론이었다. 아들을 논산훈련소에 내려 주고 집에 돌아오면서 몇 가지 결심을 했다. 남편 와이셔츠를 집 주변 크린토피아에 맡긴다. 와이셔츠 세탁과 다림질을 집에서 하지 않고 맡기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와이셔츠 세탁 후 다림질까지 해 주는 비용이 990원이었다. 일주일 분량 셔츠를 맡기고 금요일에 찾아오면 된다. 아침을 건너뛰기로 했다. 간헐적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루 두 끼, 점심 저녁을 챙겨 먹기로 한다. 주말 점심은 같이 먹고 저녁은 각각 챙겨 먹기로 했다. 각자 먹고 싶을 때 국 데우고 반찬 꺼내 갖자 먹고 싶은 시간에 먹는다. 예전에 일이 있어 나갈 때 반찬을 식탁에 다 차려놓고 나갔다. 국은 데워먹을 수 있도록 가스레인지에 준비해두고 나간다. 이제 집에 50대 초반 부부 둘만 남았다. 큰 아이는 독립해서 학교를 다니던 때라 일찌감치 집이 텅 비었다. 아이를 키워놓고 나면 자유롭고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먹을 입은 줄었지만 여전히 남편이 있고, 연로하신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이 돌봄을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남편이 장남이라 제사를 지내는 큰 며느리 역할이 남는다.
페미니스트, 자녀를 다 키우고 나니 엄마가 되기 이전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한 존재로 자기표현에 관한 주제의 글을 쓰면서 더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은 여성 차별에서 출발해서 ‘모두’가 인간인 세계로 나아가는 시작이다. 시어머님이 팔순이 되면서 눈에 띄게 몸이 약해지셨다. 어느 날 큰 며느리인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제사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데 그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가족 모두의 일을 왜 큰 며느리인 나에게 말하지? 싶었다. 이 일이 왜 어머니에게서 큰 며느리가 이어갈 일이지? 제사 문제는 각 가정의 가부장 문화를 있어가는 뜨거운 감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아들이 결혼할지 모르겠지만 내 며느리에게 똑같은 대물림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이제라도 페미니스트가 되어야겠다.
대체로 엄마 역할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행복한 육아에 걸림돌이 된다. 엄마 이전에 한 여성이다. 한 인간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알면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워낼 수 있다. 인생의 절반을 육아와 교육에 에너지를 쏟은 후 내린 결론에 나도 좀 놀랐다. 결혼해서 내 딴에는 남편에게 맞추고 살았고 아이들 키우느라 내 시간을 쪼개 써야 했다. 돌아보니 내 일 보다 아이 키우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게 순전히 내 생각이었는지, 부모님 가르침이었는지, 사회적인 통념을 따른 건 지 모르겠다. 끝까지 결혼생활을 유지하려 노력했으나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즈음 이혼을 한 지인의 말이다. " 이혼하고 보니 자기 의견을 끝까지 말하고 서로 만족할 때까지 싸우는 부부가 더 잘 사는 것 같아요. 싸움이 되더라도 자기 의견을 말해야 했어요. 내 것을 포기하면 산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미움이 싹트기 시작했어요" 적당히 맞추면 결국에는 갈등이 생긴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맞추는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걸 충족할 수 없다.
아이 다 키우고 엄마에서 온전히 자신으로 돌아갈 시기가 오자 여러 생각들이 겹쳐 올라온다. "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 " 어떻게 살고 싶은가?" 불평등의 시대란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 386세대 여성들은 남성들과 달리, 애초부터 소수만 상층 노동시장에 진입했거나 진입한 자들도 장시간 생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산과 육아 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었다. 가부장 문화가 지배적인 386세대의 남성들이 육아에 동참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세대의 한계다. " 가족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그래서 경력단절 여성 문제가 나온다. 좀 더 관심 있게 공부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가부장적인 남성문화. 싸우기 싫다는 회피로 맞추거나, 혹은 무관심으로, 혼자 행복한 방법을 찾는 소극적인 해결 방식이 가져온 후회. 뭐 이런 걸 젊은 엄마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자녀를 키우고 여성으로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남아있음을 본다. 여성에게 이기적이라는 말처럼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이 있을까 싶다. " 이기적이다" 요즘 이 말이 다르게 들린다. 누구나 이기적이어야 한다.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해 많은 갈등과 불행이 생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하지 않으면 누가 행복을 대신 채워줄 수 있을까. 이기심은 자신이 자신을 믿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인터넷에 이기심에 대한 의미를 검색해 봤다. "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마음이다. 자기라는 우주의 하나뿐인 개체가 지닌 독특하고 특별한 성격과 특성을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대하는 자체가 이기심이다" 남편도 가족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집은 남편보다 내가 더 이기적이다. 그래서 남편은 종종 나에게 “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일 수 있어?”라고 화를 낸다. 결혼하고 아이들 어릴 때 남편에게 자주 분노했다. 아이를 분명 함께 낳았는데 회사 일만 하고 집에 와서 손끝 까딱 하지 않는 남편이 그렇게 이기적인 인간일 수 없었다. 화를 내면 낼수록 서로 멀어져서 너는 너, 나는 나가 되었다. 어떨 때는 사소한 일로 싸움이 나면 그날로 집안일 도움을 하나도 받을 수 없이 단절된다. 쓰레기통이 꽉 차도 혼자 버려야 하고, 집안 청소를 2주째 하지 않고 지내야 했다. 싸움은 내가 점점 이기적이 되어갈수록 줄어들었고 남편에게 화를 덜 내게 되었다. 남편에게 기대해서 해주길 바라는 일이 줄어들수록 덜 싸우게 되었다. 내가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가는 자체가 나에게 굉장히 이기적인 삶이 되었다. 이기적인 삶을 살면서 비로소 행복하다. 이기적이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