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관계를 살리는 솔직한 자기표현
첫 번째 책 " 화내는 엄마 불안한 아이"는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삶을 책임과 의무로 살아내느라 감정을 억압한 화에 대한 이야기다. 내 화의 대부분 원인은 '해야만 한다'라는 책임감에서 나온다. 오빠가 있었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 작은아버지 댁으로 전학을 간 바람에 실질적인 장녀 역할을 했다. 돌아보면 불과 7~8년 정도 되는 시간인데 ' 해야 한다'라는 책임감은 평생 동안 나를 움직인 동력이었다. 책임감 있는 사람은 혼자 알아서 잘한다. 일일이 시키지 않아도 그 사람 내면에 잔소리 꾼이 날마다 쓴소리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듣는 잔소리보다 날마다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가 크다. '하지 않으면' 곧바로 죄책감이 생긴다. 부모님이 연로해서 이제 잔소리 한마디 들을 필요가 없는데 어김없이 잔소리가 일으켜 세운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느니 하고 만다. '해야만 한다'라는 책임감 때문에 뭘 하고 나면 억울함이 올라온다. 일을 마치고 나면 홀가분한 기쁨은 잠시 얼른 벗어나고 싶다. 삶을 해야만 하는 의무처럼 살게 되는 게 너무 싫고 힘들었다. 나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아이들에게 '하지 않으면 안 돼 ' 수도 없이 잔소리했다. 하지 않으면 화가 났고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데 그럴 수가 있냐면서 억울하고 서러웠다. 주변에 책임을 맡았는데 느슨하게 하는 사람을 보면 몸에서 분노가 올라왔다. 나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언제든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을 내가 하고 싶은데 내 마음 안에 잔소리꾼을 어찌할 수 없어 힘들었다. 남은 거리를 두고 피할 수 있지만 날마다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잔소리 꾼과의 싸움이 힘들었다. 그러다 비폭력대화를 만났다. 자녀를 키우면서 이 책 저 책, 심리 강연, 부모교육 강연 모두 듣고 읽고 찾아 배웠지만 결국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모든 귀결은 자신에게로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됐다. 비폭력 대화는 자신을 연민으로 대하고 자신을 따뜻하게 대하면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듣게 되었다. " 천천히 네 속도로 할 수 있는 만큼 해도 괜찮아. 언제든지 네가 하고 싶을 때 해도 돼. 하다가 그만둬도 괜찮아."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울컥했다.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 모른다. 내 마음에서 한바탕 잔소리꾼의 폭풍이 지나간 후, 얼마나 간절하게 듣고 싶은 말이었는지 모른다. 그 말이 그렇게 듣고 싶었구나!
돌아보니 삶의 어떤 순간에도 괜찮다고 말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는 걸 알겠다. 소소하게 외국인이 가르치는 영어학원을 다닐 때였는데 스리랑카에서 온 부부 강사였다. 함께 등록한 친구는 그 강사가 굉장히 잘 가르친다면서 좋아했다. 난 그 시간에 들어가면 긴장으로 몸이 굳는다. 편안하게 입을 뗄 수 있어야 하는데 틀릴까 봐 신경이 쓰여 편하지 않았다. 내가 선호하는 수업은 틀려도 괜찮고 대답하기 불편하면 언제든지 패스할 수 있는 선택이 온전히 강사가 아닌 수강생에게 있는 시간이다. 발표나 표현은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안전할 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안전함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무슨 말을 해도 비난받지 않을 거라는 상호 신뢰가 있을 때 긴장이 풀리고 편안해진다. 그럴 때 나의 고질병 '해야만 한다'라는 책임감이 내려지고 나의 주특기 즐거움, 쾌활한 유머가 어디서 생겨나는지 샘솟는다. 옳고 그름, 정답이 없다고 친절하고 따뜻하게 안내해 주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 앞에서 내가 원래 갖고 있는 활발하고 재미있는 기운이 솟아나 그 공간이 재미와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진다. 나란 사람의 생기 있는 기운이 마음껏 발현되는 순간, 난 책임감 때문에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이 아니라 즐겁고 기쁜 존재로 그 자리에 있음을 알게 된다.
옳고 그름이 명확한 사람 앞에서도 나에 대한 표현을 편안하게 하기 힘들다. 내 행동이 저 사람 기준에 옳은지, 틀린 지 살피느라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말을 아낀다. 그럴 때마다 옳고 그른 기준은 누구냐에게 각기 다른데 내가 왜 다른 사람의 옳고 그른 기준에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괜찮아! " 되도록 상대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존중하고 싶어서 신경이 쓰이는구나. 그 사람을 마음으로 배려하고 싶어 하는구나"로 바꾸어 생각한다. 상대 기대에 내가 맞춘다고 생각하면 답답하다. 내 마음대로, 나대로 행동하면 상대와 멀어지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으로 하는 행동은 즐겁지 않다. 상대의 옳고 그른 기준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싶어 하는구나 내가 원하는 것과 연결할 때 미소가 지어진다. 그 사람과 잘 지내고 싶어서 마음을 내는 나 자신이 따뜻하게 여겨진다.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다.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숨통이 트이고 자유롭다. 감정 조절이라는 책에 나온 내용이다. ' 감정적인 취약함이 드러나도 이것이 비난이나 수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편안히 잘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해야 한다. 슬프거나 화난 감정들을 편안하게 표현할 수 있고 이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때 안전감을 느낄 수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어린 내가 있는 그대로 사랑받으려면 부모가 해야 한다고 말했던 그대로 해야 된다고 생각했나 보다. " 해야만 한다"라는 강요는 부모가 한 게 아니라 내가 사랑을 받기 위해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책임감이었다. 책임을 다하면 원하는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말이다. 엄마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표현하지 못하고 부모가 원하는 기대를 채우면 말하지 않아도 원하는 사랑이 채워질 거라 믿었던 결과이지 않을까?